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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 연재 26. 20세기의 정치와 종교 (Continued 1)/PhD Hugo W. Kim

양곡(陽谷) 2023. 9. 17. 07:54

문명사 연재 26. 20세기의 정치와 종교 (Continued 1)

(b) 세계대전 사이의 세계 (1919-39)

영국은 1921년 워싱턴 해군 회의로 주요 강대국의 해군력을 제한하였으며, 1923년 미국과 협상으로 전쟁부채를 62년 연부 상환에 합의하였다. 1925년 로카르노 조약으로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독일과 평화적 관계를 회복하였다. 독일의 전쟁배상의 석탄선적이 부실하여 프랑스가 루르지역을 점령하자, 독일은 지폐의 대량 인쇄로 지불하여, 마르크화의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프랑스는 마지노 장벽을 구축하여 독일의 위협에 대처하였다.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1918-33)을 수립하여 초인플레, 정치적 불안정, 전승국과의 분쟁관계로 무거운 문제에 직면해 왔으나, 1925년 로카르노 조약으로 통화와 정치의 안정을 회복하고 비교적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1929년부터 공황 위기가 닥쳐와 고도의 실업으로 대통령은 비상대권으로 통제하고, 1933년 아돌프 히틀러를 수상에 임명하였다.

[동부 유럽] (1) 그리스-터키 전쟁(1919-22)은 그리스가 아나톨리아 반도로 진격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패퇴하여, 그리스는 왕정이 무너지고 터키는 오스만제국이 무너져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2)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을 대치하여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하였으나 각각 반년을 넘지 못하였다. 1920년 2개 정당이 출현하여 의회가 왕정을 복원하였다. [소비에트 연방] 1924년 스탈린이 레닌을 계승하고, 1927년 곡물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여 집단농장(1928-1940)을 운영하고, 1930년대 91%의 농지가 집단 수용되었으며, 기술의 부족과 고의적인 행동으로 몇 회의 흉년이 와서 700-1400만이 사망하였다. 스탈린은 비밀경찰과 정보기관을 확대하고 1934-39년에 대숙청을 단행하였다. [라틴 아메리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좋은 이웃 정책으로 남미국가들이 미국회사를 국유화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였다.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는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 관계를 증진하였다. [이집트] 영국 통치에 대한 이집트의 불만은 영국의 전쟁 개입이었다. 일차대전 중 영국은 많은 외국 부대를 이집트에 풀었으며, 1500만의 이집트 노동력을 동원하고, 건물, 곡물, 가축을 전쟁목적으로 강요하였다. 1922년 영국은 이집트 독립을 선언하였고, 1949년 영국군은 모두 철수하였다. [일본] 관동군은 일본이 소유하는 남만주 철도를 따라 배치되어,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만주에 괴뢰정권을 세웠다. 제2 중일전쟁(1937)에 승리한 일본군은 남경 학살사건을 일으켰으나, 장개석의 중국정부를 파괴하지 못하였다. [중국] 쑨원(1866-1925)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트리고 중화 공화국(1912-49)을 수립하였다. 그의 사후에 장개석(1887-1975)이 계승하여 남경에 수도를 정하고 국민정부를 선포하였다. 1936년 공산당 토벌 작전에서 부하에게 감금되어 국공합작을 승인하고 일본군과 싸워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되었으나, 그동안 모택동이 세력을 확장하여 공산당에게 밀려 1949년 대만으로 이전하였다.

1920년대 국제관계: 경제와 안보

세계 대공황(1929-39): 독일이 인플레이션과 경제난으로 배상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자 영국, 프랑스, 여타 부채 국가들은 자신들의 부채를 상환할 수 없었다. 1924년 미국의 도스 계획에 의해, 독일은 국채발행으로 미국에서 2억 불을 차관하여 배상금 지불을 합의하고, 프랑스군은 루르에서 철수하였다. 1929년 미국 주식 대폭락으로 세계 대공황은 1932년 주가가 1/10 수준이 되고 전 세계에 대량의 실업을 초래하였다. 미국은 케인스의 이론을 따라,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여 뉴딜 정책(공공사업)으로 고용을 창출하였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금 본위에 의존하여 금융 확대정책을 펴지 못하여 경기회복을 지연시켰으며, 미국의 새 관세법(1930)은 국제무역을 감소시켜 불황과 동행하였다. 독일은 나치와 공산주의 선동으로 사회가 혼란하고 신용이 추락하여 제국은행이 붕괴에 직면하자. 미국 후버 대통령은 전쟁배상 지급 유예를 요청하여 6개월간 지불이 동결되었고, 독일은 영국과 미국 민간은행으로부터 긴급자금을 받았다. 금융위기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1933년 1월 나치가 집권하게 되었다.

파시스트 경제: 파시즘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조합주의와 계층적 협업을 선호하였다. 파시스트 경제는 사유재산과 사적 주도에 기초하지만 국가에 대한 봉사를 전제로 하였다. 나치는 경제 도약에 중점을 두고 재군비를 포함하여 국가 경제계획을 수행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성장을 가져와 독일국민의 지원과 충성을 받았다. 1936년 히틀러는 4년 안에 독일군이 전쟁을 준비하도록 명하였다. 독일군의 재무장은 독일경제를 크게 부흥하여 번영을 가져와 국민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공산주의 경제: 1921-28년 러시아는 신경제정책으로 시장이 존재하여 경제가 회생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생활 수준은 향상되었다. 스탈린은 정부 통제하에 경제계획을 고려하여 제1차 5개년 경제계획(1928-32)을 시작하고 대규모 산업화 노력으로 러시아를 산업국가로 전환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농업 집단화로 농부계급을 없애고 농촌노동자계급으로 공산화를 시도하였으나, 생산성이 감소하여 여러 해의 흉년과 기아를 체험하였다.

전후 국제 금융체제: 1816-1919 기간은 최초 세계화의 시대로서 금융연합은 회원국 간에 타국의 화폐를 받아 주었으나, 비회원국 간에는 금 본위를 적용하였다. 1919-39 기간은 비세계화 기간으로 무역과 투자가 감소하였고, 세계대전 중에는 국가들이 금 본위를 포기하였고, 1930년대 초에는 변동환율제도를 적용하였다. 미국은 1930년대 무역장벽을 높이고, 국제대출의 최후 조치국으로 나서는 것을 거부하였다. 국제연맹의 신임과 효과: 국제연맹은 1920년 42개국에 의해 수립되어 58개 회원국을 보유하였고, 매년 회의를 하였다. 여러 번의 작은 전쟁을 예방하고 인도주의적 개선을 위해 여러 기관을 만들고 지시하였다. 국제연맹은 군대가 없어 자체 규정을 시행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1935), 독일의 수데텐란트와 오스트리아 병합, 일본의 만주침공(1932) 등은 실패한 예이다. 독일은 평화조약을 해체하려고 노력하였다. 로카르노 조약(1925):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의 대표가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체결한 국지적 안전보장 조약으로 5개 조약과 2개 협정으로 구성되었다. 제1 조약은 벨기에, 프랑스, 독일의 국경을 상호 보장하고, 이를 영국과 이탈리아가 보장하였다. 제2 및 제3 조약은 독일과 벨기에, 독일과 프랑스 간의 미래 분쟁에 관한 중재재판을 요청한 것이다. 조약의 효력 발생과 함께 독일이 국제연맹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1936년 히틀러는 조약을 파기하였고, 독일군이 라인란트에 침입하고 재무장을 하였다.

미국과 유럽의 대공황(1929-39)

미국의 대공황: 미국은 1920-29 기간에 국부가 배로 증가하고 부자와 빈자가 저축을 모두 주식에 투자하여 1929년 여름 주식 가격이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나 경제는 이미 생산이 감소하고 실업이 증가하여 주식가격은 크게 과대평가 되었다. 더욱이 저임금에 소비자 부채가 급증하고, 가뭄과 식품 가격하락으로 농업경제가 고전하며, 은행은 대출초과로 회수가 어려웠다. (1) 1929년 여름 완만한 불황으로 진입하여, 소비가 감소하고 재고가 쌓여 공장은 생산을 감축하였다. 그러나 주식가격은 하늘까지 계속 치솟아 크게 과대평가 되었다. 1929년 10월 예민한 투자자들이 주식을 대거 매도하자, 공포에 질려 모두가 따라서 매도하여 주식시장이 붕괴하였다. 소비와 투자의 감소로 생산과 고용이 감소하고, 소득-소비-생산감소가 이어져 불황이 대공황으로 번져 전 세계에 확산하였다. (2) 산업생산이 반감하여 1930년 400만 실업자가 다음 해 600만이 되었고, 1932년 20% 국민이 실업으로 식생활이 어려워지고 무주택 방랑자가 증가하였다. 투자자들이 적금을 찾아가자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한 수천의 은행들이 1933년 문을 닫았다. (3)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45) 대통령은 산업과 농업생산의 정상화와 직업 창출로 경제회복을 시도하였다. 뉴딜정책으로 공공 건설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연방저축보험공단(FDIC)과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창설하여 금융기관의 신뢰를 회복하였다. 1941년 미국의 참전으로 산업생산 증가와 징병으로 인하여 실업률이 정상 수준을 회복하였다,

유럽의 대공황: 미국의 대공황이 유럽에 확산하여 1929-39 기간에 특히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는 국민의 20%가 실업자로서 산업생산량이 40% 감소하였고, 1932년 무역액은 1929년의 1/3에 머물렀다. (1)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은 재정이 어려웠고, 1924년 도스 계획으로 미국은 (민간투자로) 독일에 5년 동안 40역 불을 대출하였고, 1924-30 기간에 유럽에 총 78억을 대출하였다. (2) 유럽은 산업 전반에서 기술이 후진하여 시간당 생산성이 미국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기술의 혁신이 요구되었다. (3) 유럽 각국은 국내시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1920년대에 무역장벽을 강화하여 유럽경제는 더욱 나빠졌다. (4) 유럽에서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통화 안정이 정부의 기본 목표가 되었다. (5) 유럽은 금본위 제도를 유지하여 물가의 안정과 무역에서 환율을 유지하였으나, 금본위 제도는 통화의 발행을 제한하여, 화폐의 공급을 늘리지 못하였다. (6) 1933년 나치 독일은 무역과 외환거래와 함께 물가, 임금, 투자를 통제하였으며, 금본위에서 해방하여 소비자의 수요를 늘리고 소득을 올리기 위해 팽창정책으로 정부예산을 늘리고 1933-34 기간에 공공투자가 배로 증가하였다.

1930년대 유럽 안보체제의 붕괴

독일의 재무장 배경: 독일의 재무장은 바이마르 내각이 비밀리에 불법으로 재무장을 하는 법을 만들어 1919-33 기간에 소규모 비밀리에 수행된 숨겨진 작전으로 애국심과 정치 경제적 민족주의가 혼합되었다. (1) 경찰력을 훈련하고 장비하면서 준군사적 조직을 만들고 예비군을 동원 가능케 하였다. 여러 준군사적 그룹이 위험한 수준으로 무장하여 국가를 위협하는 잠재적 세력이 되었다. 전후 독일은 왕정에서 바이마르 공화정으로 급조되어 많은 세력이 민주주의를 폐지하려고 계획하였다. (2) 이 시기에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은 광범위한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독일은 군사훈련을 러시아 지역에서 비밀리에 실시하여, 양국은 호전과 협력이 공존하는 관계였다. (3) 1933년 나치는 재무장을 위하여 가짜 회사를 만들고 신용장을 발행하여 재군비를 위해 거대한 자금을 모았다. 독일 항공수송학교는 민간을 가장하여 미래 조종사를 훈련하였다. 독일 재무장은 산업을 크게 확장하여 대공황을 넘어 독일 경제를 활성화하였다. (4) 1935년 히틀러는 국제연합을 탈퇴하여 재무장을 선언하고 징집을 시작하였다. 대기업은 다변화하여 생산에 혁신적 개념을 도입하였고, 조선소는 항공기 설계와 건조를 시작하여 혁명적인 기술개혁의 전기를 만들었다. (5) 스페인 내전은 독일이 제조한 신무기와 항공폭격 등을 시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재무장 프로그램은 독일 장교단 규모를 신속히 증가하였고, 증가하는 군사력의 개편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6) 1936년 히틀러는 라인란트로 군대를 진입시켜 프랑스가 반응하지 아니하니 독일의 재무장이 묵인되었다. (7) 유럽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히틀러는 정부예산을 계속 증액하여 군사력을 건설하였다. 나치 지도자들은 동부 유럽과 러시아 서부를 장악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생활 공간을 확보하려는 야심을 가졌다. (8 ) 미국의 150여 기업이 독일과 합작이나 협력관계를 통하여 생산기술, 통신장비, 계산기계, 항공기술, 군용차량, 생산 자재, 생산시설, 연료, 자금 등을 독일회사에 제공하였다.

이탈리아의 입장: 이탈리아는 프랑스가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를 장악하여 지중해의 절반을 지배해온 데 불만이 있었다. 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은 독일-오스트리아 통합(Anschluss)을 시도하여 계속 논의하였다. 1935년 히틀러가 재무장을 선언하면서 독일 공군이 존재하고 36개 사단을 창설하겠다고 하여, 무솔리니는 영국과 프랑스 수상을 초대하여 회합에서 독일의 위협에 공동 대응을 선언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라인란트나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의 폭거에 대해 비밀리에 군사원조를 하기로 합의하였다. 소비에트 연방: 프랑스는 러시아가 일차대전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고 투자한 부채의 상환거부에 반감이 있었다. 소비에트는 러시아 내전에서 프랑스가 반 볼셰비키의 입장에 서고 1920년대 소비에트에 대한 폴란드 공격을 지원한 데 대한 반감이 있었다. 프랑스는 평화협정의 주된 수혜자로 현상 유지를 원하였으나, 소비에트는 많은 영토를 상실하여 전후 유럽체제 파괴를 원하여 독일과 협력하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러시아를 향하여 생활 공간을 확대한다고 공언하고 공산주의 이념을 비난하였다. 1933년 양국 간의 비밀 군사협력 관계는 중단되고, 러시아에 있는 독일 군사시설은 폐쇄되었다. 1935년 프랑스-소비에트 조약은 독일을 견제하기 위한 협력관계가 발전한 것이며, 프랑스-이탈리아 군사협력에 관한 대화도 시작하였다. 반 독일 블록의 붕괴: 영국과 독일은 해군조약(1935)을 체결하고 독일 해군을 영국의 35%로 제한하였으나, 실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 일차침공(1895-96)에 실패하고, 제2차 전쟁(1935-36)에서 승리하여 이를 식민지로 만들고,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를 병합하였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경우는 모두가 베르사유 국제 평화조약에 반하는 행위로서 집단안보 정신을 약화하였다.

스페인 내전(1936-39): 스페인에서 민족주의를 지원하는 우파(가톨릭 포함)는 공산주의 확장을 반대하고 노동조합, 학생, 지식인을 포함하는 좌파는 사회주의로 파시즘에 저항하여 일어난 내전은 외세가 대거 개입하였다. 독일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우파를 지지하고, 러시아는 파시즘에 저항하는 좌파를 지지하여, 결국에 민족주의 진영의 우파가 승리하였다. 로마-베를린 축선: 이탈리아와 독일은 정치 군사적으로 베를린 동맹(1936)을 체결하고, 같은 해 독일과 일본이 반 코민테른 조약(1936)을 체결하였다. 베니토 무솔리니의 묵시적 동의를 얻은 후에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였다(1938). 독일-일본 관계: 독일 빌헬름 2세는 일본이 랴오둥반도를 점령하자, 군사체제를 공부하러 오는 일본군 유학생 수를 제한하였다. 일러 전쟁(1904-05)에서 독일은 러시아를 지원하였으나 일본이 승리하였다. 일차대전에서 일본은 독일과 싸워 중국과 태평양의 독일 식민지를 탈취하였다. 전후 일본은 독일과 문화적 친선관계를 발전시켜, 양국은 이탈리아와 함께 1936년 반 코민테른 조약에 서명하였다. 히틀러의 반 소비에트 감정은 (미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일본이 러시아에 대적한다고 보고) 친선관계를 만들고 이탈리아와 함께 추축국을 형성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8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할 하였다. 1938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여 이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저강도 전쟁을 시작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를 독일에 양도하도록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다. 독일군이 체코 국경을 침공하여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해 9월 뮌헨에서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지도자들이 회합하고 뮌헨 합의에 서명하여, 체코는 수데텐란트 국경지역을 독일에 양도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1939년 3월 체코와 헝가리를 합병하고, 폴란드에 대한 위협을 계속하였다. 히틀러는 폴란드에 단치히를 요구하여 거부하자 예정대로 폴란드 공격을 준비하였다. 몰로토프 리벤트로프 조약은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1939년 8월 모스크바에서 양국 대표가 서명하였다. 양국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다; 한쪽이 공격을 받으면 공격자를 원조하지 않는다; 쌍방은 일방을 적대하는 단체에 가입하지 않는다;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합의하였다.

TO BE CONTINUED

(c) 제2차 세계대전 (1939-45)
(d) 냉전과 국지전 (1945-85)
     트루먼-스탈린 시대의 양극 세계 (1945-53)
     평화공존과 대결 (1953-62)
     화해와 다극화 (1962-75)
     아시아의 냉전과 중국의 부상
     중동,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극동의 분쟁 (1875-85)
(e) 세계화와 새로운 도전 (1985-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