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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 연재 15/ 재미 원로학자 Hugo W.Kim

양곡(陽谷) 2023. 7. 11. 20:25

문명사 연재 15. 근세초기(1400-1715)의 역사적 교훈

중세 암흑시대를 지나 유럽 각국은 흑사병과 백년전쟁의 여파로 고통을 받았으나, 1450~1600년 사이에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하여 문예부흥, 종교개혁, 지리상의 발견으로 정치와 경제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철학 분야는 자연법사상에 기초하여 사회계약의 개념이 확립되었고, 인식론의 방법에서 영국의 경험주의와 대륙의 합리주의가 대립하였다. 경제체제는 봉건주의-농업 자본주의-상업자본주의로 전환하였고, 화폐의 수량이론과 중상주의 개념이 발전하였다. 여타 지식의 발전에서 교육, 천문학, 의학 분야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본 연재는 (a) 근세초기의 유산 (b) 정치와 종교의 상호작용 (c) 이론과 실제의 관계 순으로 근세초기의 역사적 교훈을 기술하고자 한다.

(a) 근세초기의 유산

문예부흥의 유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교황이 왕을 통제하는 신정 봉건주의의 구조적 문제점을 반영하였다. 정치적으로, 이탈리아가 도시국가로 분할된 것은 르네상스에 유리하였다. 하나의 큰 통일국가는 자유로운 문학예술보다 규율이 엄한 권력을 요구함으로, 교황은 이탈리아반도가 통일되어 자신을 포로로 만들 것을 우려하였고, 반도 내에서 도시국가 간에 세력 균형을 유지하여 그들의 방어능력을 약화하였다. 경제적으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들은 13세기에 제조업과 상업의 발달로 번영을 이루어, 그들의 부는 문학과 예술 활동을 지원하였고, 그들의 운동은 농촌의 평화로부터 도시의 활력으로 문화적 통로를 바꾸었다. 사회적으로 증가하는 부는 전통적인 제한을 완화하였고, 무역과 십자군에서 이슬람과의 접촉은 다른 신앙과 방식에 대해 새로운 관용을 주었고, 우상숭배 세계의 재발견은 중세의 도덕에 매이지 않고, 사회 문화적 생각과 행동은 중세주의로부터 자유로운 방식을 향하여 움직였다. 르네상스는 문학과 예술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감성적 발달. 자국어(Vernacular)의 발전, 그리고 그리스-로마 고전의 회복과 연구 등에 노력을 모았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종교로부터 철학으로, 천국으로부터 지상으로 인도되었고, 우상숭배의 사상과 예술의 풍요함을 나타내어 세대를 놀라게 하였으며, 인문주의 운동을 통하여 그들의 정신과 이상을 유럽 전역에 전파하였다. 이탈리아 전쟁, 인도항로 발견, 오토만 터키, 교회분열로 인한 경제적 추락으로 르네상스는 기울었으나 그 영향은 지대하였다. (1)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분할되어 있어, 인문주의자들은 하나의 이탈리아를 원하였으나 교황국가는 통일국가를 향해 영원한 걸림돌이 되고, 이탈리아 전쟁은 통일국가가 되는 희망을 제거하였다. (2) 르네상스는 고등교육을 통하여 전인 (All-Sided Man)을 육성하는 개성의 자유를 추구하였다. (3)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키케로와 세네카의 저술에서와같이 이교주의 입장에서 고전의 회생에 이바지하였다. 대표적 작품은 단테의 신곡, 페트라르카의 서정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등이다. 왕족이나 제후들의 자녀는 대학에서 고전의 연구를 통하여 인간성을 배웠다. (4) 르네상스의 정신과 노력은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인간의 지적 연구, 즉 —문학과 예술에서 인간과 자연의 발견을 자극하였다. (5) 르네상스는 계층 간이나 남녀 간에 평등을 추구하고, 출생이 인간의 선함과 악함에 아무 결정도 못 한다는 신념이 15세기 이탈리아를 지배하였다. 상층 가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교육은 다르지 않았다. (6) 르네상스의 세속 됨은 고전, 이교주의, 자유를 믿는 개인주의, 철학과 과학의 합리주의 유입으로 새로운 사상의 홍수 속에서 종교개혁을 선호하는 중세 주의(Medievalism)와 대조되었다.

종교개혁의 유산: 14세기는 흉년, 흑사병, 전쟁 등으로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혼란, 사회적 격변과 반란을 초래하였다. 신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은 최고의 진리를 위해 감성을 불신하고 이성에 의존하는 외부효과(Outward Effects)로부터 신과 종교에 접근하였다. 반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나 제라드 그루테와 같은 신비주의 신학자들은 애정을 신뢰하여 사랑이 이성보다 더 멀리 도달하고, 마음이 자연의 한계를 초월하도록 돕는다고 믿는 최고의 선으로서 내부효과(Internal Effects)를 강조하였다. 프랑스의 필립 4세는 전쟁비용을 위해 성직자에게 과세하여 교황 보니페이스 8세와 불화하였고, 결국 프랑스가 교황선거에 개입하여 교회의 대분열을 초래하고 조정위원회가 봉합하는 역할을 하였다. 마르실리우스 파도파는 교회는 세속적 국가의 일부로서 정신적 업무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윌리엄 오컴은 인간은 물질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가 있고, 재산의 범주는 법적으로 교회가 아닌 국가라고 하였다. 또한, 존 위클리프는 교회의 남용과 부패를 공격하고, 성직자의 독신, 성체성사, 영상의 경배, 성지 순례를 반대하였다. 얀 후스는 연옥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고 교회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였다.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뮈스나 토머스 모어는 부패한 교회를 비판하고 교황체제 내에서 개혁을 제안하고, 신비주의를 따르는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사회의 단점을 제거하고 기독교를 재생시키는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또한, 유럽 제국의 정치적 통합, 해양 무역으로 경제 성장, 르네상스로 사회의 세속화, 과학기술의 진전 등은 종교개혁을 위한 유리한 발전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1517년 95개 논제로 사회변화를 원하는 시대의 공동욕구인 종교개혁 운동에 과감히 점화하였다.

종교개혁의 시대(1500-1650)는 신교운동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간에 종교가 인간의 모든 생활에 침투하던 믿음의 시대였다. 그것은 신교주의의 부상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 제도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정치에서, 종교개혁은 정치적 혁명은 아니었으나 국가적으로 또는 국제적으로 정치 권력의 균형에 영향을 주었다. 찰스 5세는 프랑스, 터키, 로마 때문에 독일에서 루터운동을 진압할 시기를 놓쳤고, 변화를 요구하는 신민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제후들은 루터를 지원하였다. 유럽은 가톨릭과 신교도로 양분되어 1648년까지 일세기 동안 지속적인 내외 전쟁을 하였다. 전쟁은 토지를 황폐시키고 인명을 살상하며 경제를 파탄시켰다. 관용의 부재 속에 스페인은 1609년 25만 명의 모리스코를 축출하고, 프랑스는 1685년에 낭트칙령을 폐지하여 20만의 휴그노가 제3 국으로 탈출하여, 노동력과 자본의 유출로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였다. 사회적으로, 신교 국가에서 가톨릭교회와 수도원의 모든 재산이 국가에 몰수되어 경매가격으로 대중에게 매도되었고 수도사나 수녀들은 해산되어 흩어졌다. 영국은 헨리 8세가 1536년에 578개 수도원과 130개 수녀원을 폐쇄하여 6,521 수도사와 1,560 수녀가 해산되었다. 문화와 종교에서, 인간화의 기초 위에 새로운 교리와 이론이 수립되고, 전통적인 의식구조는 종파 간 미미한 차이는 있었으나 파괴되거나 단순화되었다. 종교개혁은 사람들이 종교적 독재에 저항하게 하였고,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중요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지리상 발견의 유산: 포르투갈은 15세기 항해술, 지도제작, 조선기술과 결합하여 대서양 섬들과 아프리카 서해안을 탐험하였다. 화물선 카락 (3-4 돛대로 400~600t 선적)으로 동인도 무역항로를 발견하여, 16세기에 아시아의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였다. 스페인은 서인도와 아메리카를 발견하여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네덜란드는 플뤼트 (2~3 돛대로 200~300t 선적)을 개발하고 화포로 무장하여 저가로 세계의 화물 수송을 독점하였다. 1650년경부터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이 건설한 아시아 무역거점을 무력으로 접수하고 양념류 무역을 독점하였다. 영국은 1652~74년 사이에 네덜란드와 3회의 해전에서 승리하여 18세기에는 대서양과 인도양에서 최강의 해군력을 확보하였다. 지리상 발견의 동기는 경제적 이득, 종교적 열의, 정치 사회적 욕망, 모험에 대한 애착 등이었다. 터키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1453), 희랍 정교를 인정하며 로마 가톨릭교회를 억압하고, 해상항로 발견 이전의 무역로를 차단하여 양념류 무역을 독점하였다. 1492년 카스틸의 이사벨라는 그라나다를 정복하여 모슬렘과 유대인에게 개종을 명령하고, 콜럼버스의 항해에 재정지원을 승인하였다.

포르투갈은 16세기 초 말라바르해안의 고아, 말라카, 세일론을 장악하고 마카오와 일본 규수까지 무역을 확대하고, 아시아에서는 식민지를 개척하지 않았으나, 브라질에 새로운 식민지를 열었다. 스페인은 처음 20년은 탐험가의 시대였고, 다음 30년은 정복자의 시대였다. 그들은 아메리카 식민지에 에코미엔다 체제를 수립하여 농노처럼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후속하여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아시아와 아메리카에 상륙하여 경쟁하였으나 전자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인류문명에서 지리상 발견의 의미는 식민지에서 제국주의 착취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첫째, 유럽인들은 함대로부터 토착민의 항구에 포격하여 아시아에서 시장을 개방하고, 다른 한편으로 말을 타고 철제 검과 같은 선진 문명으로 또는 협상으로 아메리카의 토착민을 정복하였다. 그들은 농장을 건설하고 정복하는 지도자 그룹은 토착민을 다스리는 새로운 식민지의 귀족이 되고, 유럽의 모국에서 그들을 간접적으로 통제하였다. 둘째, 1450~1600년 기간에 유럽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식민지에 이민시켜 문제를 해결하였다. 유럽인들은 그들의 공산품을 식민지에 팔며 원자재나 이윤이 되는 물건을 저가로 가져오면서, 식민지 토착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였다. 식민지와의 원양무역은 유럽 경제를 크게 확장했다. 셋째,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전과 화포의 탑재는 17세기 네덜란드처럼 무역을 개방 확장하는 데 중요하였다. 영국이 식민지와 해외무역에 중점을 두는 동안, 해군력과 해군 전략이 다음 세기에 지배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유럽과의 육상 업무에 더 많이 머물러 있었다.

정치와 경제, 과학과 종교의 유산: [정치와 경제]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가인 토머스 홉스, 사무엘 푸펜도르프, 존 로크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적이다. 외부 위험으로부터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해 개인이 사회계약으로 한 공동체에 가입하여 정부 형태를 구성하고, 의무를 지키고 권리를 요구하며, 독재에 저항하는 자연적 권리를 가진다. 중상주의(Mercantilism) 이론가 토마스 문은 수출을 독점하고 외환을 통제하여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유지하면 국가가 부강해진다고 하였으나, 애덤 스미스 이후에 이론적 오류로 판명되었다. 자연법의 이론은 정치철학이나 경제사상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중상주의자인 조시아 차일드도 자연에 반하지 않고 자연을 따르는 법을 원하였다. 존 로크는 높은 이자율이 생산비를 증가하여 수요를 감소시키므로 이에 반대하였고, 리차드 캔틸런은 무역흑자는 시장기능에 의해 자동으로 조절된다고 하였다. 국가들이 경제적 이득을 위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으나 이는 인간 본성에 기초한 자유주의와 대치되는 정책이며 이론적 오류로서, 무지에서 오는 중상주의 정책은 실패하였다.

[철학과 종교] 철학(과학)과 종교와의 갈등은 수 세기 동안 내려온 이성과 믿음의 문제이다.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이성은 신의 이성을 완전히 배우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불완전하게 참여한다고 하였다. 이성과 믿음의 균형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퀴나스는 이성이 믿음을 경시하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종교개혁의 시대에 필리프 멜란히톤은 지식은 직관과 추상적 인식에서 오며, 믿음은 신에게 있고 이성은 인간에 있으므로, 인간의 이성은 신의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철학(과학)과 신학 또는 이성과 믿음의 관계는 수 세기 동안 중요한 이슈가 되어왔다. 더욱 심각한 예로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지적 세계의 기초를 허물었고 천동설에 기초한 기독교의 믿음을 통째로 흔들었다.

TO BE CONTINUED

(b)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
(c) 이론과 실제의 관계

REFERENCES

Kim, Hugo W. The Renaissance, Reformation, Discovery and Scientific Revolution From 1400 To 1715: Humanism and Mercantilism. N. Charleston, NC: CreateSpace, 2020, 541-594.

김휘국. 정치철학*경제사상과 함께 읽는 세계문명사. 서울: 한국전자도서출판, 2022, 333-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