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서문(누가 1,1-4)
누가복음 저자는 복음서 저자들중에 서문을 통해 저작 동기, 의도, 절차를 밝힌 유일한 사람이다. 그때까지 전해진 전승을 모으고 살펴, 당대 그리스문학 수준에 걸맞게 공식 문헌을 집필했다. 전승, 특히 예수 말씀을 충실히 전하려는 역사가요 복음서 저자인 누가복음 저자는 전승과 예수 말씀을 얼마만큼 문학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을까. 그런 작업을 하기에 충분한 교육과 능력을 갖고 있었을까. 문장론으로 보아 신약성서에서 가장 잘 쓰여졌다고 평가되기도 하는 누가복음 서문(누가 1,1-4)의 객관적 태도를 읽은 그리스 독자는 곧바로 누가 1,5부터 느닷없이 시작되는 전설 이야기에 당황할 수 있다. 구약성서 그리스어 번역본에 익숙했던 누가복음 저자는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문장으로 쓰여진 누가복음 서문(누가 1,1-4)은 다른 서문들에 비하면 아주 짧다. 여러 뜻이 담긴 단어 말씀ὸ λόγος(누가 1,3a)를 제외하면, 특별한 신학 용어도 없고, 하느님과 예수도 언급되지 않았다. 누가복음 저자가 서문에서 자기 이름과 신분을 밝히지 않은 사실이 놀랄 일인가 아닌가. 누가복음 저자의 두 작품이 문헌이 되려면, 어떤 제목이 적절한가. 이 두 질문이 성서연구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Bovon,) 교회에 바치는 책에 저자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꼭 필요하진 않은가(Schürmann,) 저자들은 보통 자기 이름을 밝혔고, 왜 책을 쓰게 되었는지도 설명했다.(van Unnik,)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데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대었다(누가 1,1)에서 그들의 작업이 성공했냐 실패했냐 여부를 따질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마가복음, 예수어록, 누가복음 특수 자료 저자등 겨우 몇 사람이 손을 대었다는 사실을 21세기 우리는 알고 있다. 앞선 작품들에 만족했다면, 누가복음 저자가 새 작품을 시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누가복음 내용을 분석해야만, 누가복음 저자의 생각을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 탄생, 부활 이후 사건은 누가복음 이전 문헌에서 다루진 않았다.
단어 πρᾶγμα(누가 1,1) 뜻은 다양하지만, 말씀과 예수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을 주로 가리킨다.(Bovon,) 말씀λόγος(누가 1,2.4)는 하느님의 말씀뿐 아니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기록되는 구원 역사를 누가복음 저자는 가리킨 듯하다. 단어 πᾶσιν(누가 1,3a)는 중성 명사로는 사건, 남성 명사로는 인간을 뜻한다. 여기서는 중성 명사로 보는 편이 낫겠다. 단어 주의깊게ἀκριβῶς(누가 1,3a)가 앞의 알아보았다παρηκολουθηκότι(누가 1,3a)를 가리키는지, 뒤의 쓰려고 하다γράψαι(누가 1,3a)와 연결되는지, 결정하기 어렵다. 주의깊게 알아보았다는 말일까, 주의깊게 책을 쓰겠다는 말일까.
존경하는κράτιστε(누가 1,3b) 표현은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쓰는 호칭으로서 신약성서에서 사도행전에만 다시 나온다.(사도행전 23,26; 24,3; 26,25) 이 호칭을 받은 사람이 고위 권력자라고 우리가 단정할 필요는 없다. 하느님께 사랑받는 사람이란 뜻의 데오필로Θεόφιλος(누가 1,3b)는 그리스식 이름으로 유다인도 받아들였다. 데오필로는 실존 인물(Bovon,)일까 상징적인 표현(Klostermann,)일까. 데오필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따르는 사람(Zahn,)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Klostermann,)
예수 역사가 누가복음 저자의 역사보다 중요하다.(누가 1,2) 그러나, 누가복음 서문(누가 1,1-4)은 누가복음뿐 아니라 사도행전까지, 즉 예수 역사뿐 아니라 예수운동 공동체 역사를 생각하고 있다.(Klein,) 역사πράγματα(누가 1,1)는 동시에 이루어진 일πεπληροφορημένα(누가 1,1)이라는 구원 역사의미를 가진다. 누가복음 저자는 역사가인 동시에 신학자였다.
(오늘 쓴 <갈릴래아 예수> 원고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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