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친님
오늘 어버이날을 기리며 제 수필 한 편 올립니다
어머니의 위대함
/글향 정연원
몇 해 전 온 국민들이 가슴 아파하며 공분하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양부모에게 맞아 숨진 16개월 입양아 정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드러난 그의 양모가 저지런 만행을 뉴스로 접하고 마음으로 울며 많은 생각을 했다.
분명 살림살이는 과거보다 몇 배 나아졌는데 세상은 왜 이리 팍팍하고 악해져 갈까? 과거 우리 어머니들은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기조차 힘겨운 가정형편에서도 자식들을 금쪽 같이 아끼고 돌보며 키워주셨는데...... .
그날 가슴 아픈 소식을 TV뉴스로 접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삶이 저절로 오버랩되었다.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방 안에 있는 장농이며 돈이 될 만한 모든 물건에는 빨간 딱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믿었던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갑자기 부도가 나면서 집안이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난 것이었다.
사업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큰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난생 처음 체험으로 알게되었다.
졸지에 어머니와 우리 가족들은 알루미늄솥을 만드는 공장 사장댁에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쫒겨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 5남매를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고난의 행군과 희생의 삶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막막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꽈배기 장사를 시작했다.아침 일찍 꽈배기 만드는 곳에가서 물건을 사왔다. 꽈배기를 가득 담은 무거운 커다란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다 팔릴 때까지 통통 부은 다리를 끌고 하루종일 이 동네 저 동네 골목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장사를 했다.
그렇게 어린 자식들의 끼니를 힘들게 겨우겨우 이어갔다.
한 때는 형편이 아주 어려워지자 버려진 아파트 지하실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던 적도 있었다.
장마철에는 비가 새어 지하실의 그 좁은 방안에 세수대야를 받쳐놓고 빗물을 받아내며 잤다. 겨울이 오면 강추위에 덜덜 떨었고 단칸방이 너무 좁아 다섯 형제들이 칼잠을 자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암울했던 시절을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어떻게 버티었겠나 싶다.
원래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가 약국을 하셔서 60년 전에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경남여고를 다녔던 인델리셨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교육의 중요성을 먼저 아시고 당신은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자식 교육에 힘을쏟으셨다.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 가정의 부모들은 자녀가 국민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하면 힘든 살림살에 도움이 되도록 공장에 취직시켜 돈을 벌게 했었다.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을 돈 벌러 공장에 보내지 않고 장래를 위해 공부시키려고 땅굴처럼 그 좁은 지하실 한쪽에 자리를 마련해 반찬 가게를 하셨다.
그렇게 고생고생하시며 장사를 해도 학비가 모자랄 때는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고 하시며 동네 이웃집 여기 저기에 고개 숙이며 통사정을 해 빚을 얻어서라도 자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밀어주셨다.
어머니가 당신의 자존심을 팔아 빚을 내어 우리를 공부시킨 것을 잘 알기에 밤잠을 덜 자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오늘날 우리 5남매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오롯이 어머니의 그런 고귀한 희생 덕분이리라.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허물어진 가정이란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살아오신 어머니!
어머니는 삶의 고달픔이 밀려올 때마다 혼자서 노래를 부르시며 당신의 답답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곤 하셨는데 특히 이미자 선생님의 '여자의 일생'을 자주 부르셨다.
그 노랫말 속에 힘들고 고달팠던 그 당시 어머니의 삶이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마치 어머니를 위해 만든 맞춤식 주제곡 같았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여자의 일~생'
지금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자 명언 제조기였다.
우리 5남매들의 평생 생활 신조가 된 말들이 어머니 입에서 다 나왔다.
예를들면
"남의 물건은 돌 하나도
탐내지도 말고 절대 집에 가져오지 말라."
"남에게 피해주지 말라."
"남의 눈에 눈물 내는 사람은
자기 눈에 피눈물이 난다."
"돈은 강도가 훔쳐갈 수 있지만 머리에 든 지식은 절대 못 가져 간다."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입버릇처럼 늘 강조하시던 말씀들을 지키며 올곧게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링컨대통령은 자주 기자들에게 "내가 성공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라고 했다는데 전적으로 공감이 간다.
어머니가 지금 살아계신다면 당신의 훈장같은 자식들이 성공한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실텐데 애석하게도 어머니는 61세 때 바람처럼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자식 돌보느라 당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으셨던 어머님은 요즘 평균 수명보다 한 20년 일찍 돌아가셨다. 조금만 더 사셨으면 힘든 시절에 고생하신 보람을 맛보며 여생을 더 행복하게 사셨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늘 파도처럼 밀려온다.
벌써 내 나이도 이순을 지나 종심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그러다 보니 인간사가 한 눈에 확 들어온다.그래서 어머니가 더욱 존경스럽고 당신의 삶이 더욱 더 위대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대부분의 자식들은 자신들을 위해 당신의 인생을 오릇이 희생하신 어머니가 위대하게 느껴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그립고 또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가끔씩 돌아가신 어머님이 생각날 때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배운 <어머님 은혜> 노래가 떠올라 가슴으로 부르곤 한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니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이요,
내 인생의 MVP!"
미식축구 슈퍼볼 대회에서 MVP를 수상한 재미동포 '하인스 워드'가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자신을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모든 공을 돌려드리면서 한 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처럼 숭고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위상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어 지켜보는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예전의 어머니들은 자신보다 자식을 위해 살았는데 요즘 젊은 엄마들 가운데는 자식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이기적인 행태의 엄마가 자주 물의를 일으킨다.
태어난 지 겨우 16개월의 천사 같은 어린 정은이를 지속적으로 학대하고 끝내 사망케한 인면수심의 양부모뿐만 아니라
요즘 신문지상과 TV뉴스에 수시로 등장하는 자녀를 학대하여 사망케 하는 끔직한 사례나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면 자식을 헌신짝처럼 내 팽게 치고 가정을 떠나는 일부 못난 엄마들의 행태를 접할 때마다 '저 사람 진짜 자식을 낳고 사랑한 어머니가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어 너무너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아무리 세상이 험악하게 흘러가도 어머니의 얼굴이 천사를 때려 죽인 악마처럼 변해서야 되겠는가?
어린 아이는 이 나라의 미래다.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야만 그 아이들이 이끌어갈 다음 세대를 지금보다 더 따뜻하고 살맛나는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문호 빅톨위고는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다. 과연 어머니의 그 강함과 위대함의 그 발원지는 어디일까?
아마도 희생을 통한 자식 사랑이 아닐까 싶다.자기 희생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혹독한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자식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주며,삶의 등불이 되어주신 우리 어머니!
그리고 이땅의 모든 어머니께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듬뿍 담은 사랑의 꽃바구니를 바칩니다.
위대하신 어머님,
편히 쉬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모든 자식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리라.
항상 자식들을 응원하는 이 땅의 위대하신 어머님들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일까?
오늘따라 서산을 넘는 저녁 노을이 더 붉고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