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기부 법적불합리 걷어내고 기준세운 판결”
“심급 간 판결 널뛰기, 재판 장기화는 개선돼야”
5조원대 고엽제소송도 승소...“집단소송법 필요”
“전망·시류 휩쓸리지 말고 리걸마인드 함양해야”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선의로 한 주식 기부로 인해 세금폭탄 맞은 사연’으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수원교차로’ 설립자 황필상 씨 사건.
당초 180억 상당의 주식을 기부한 그였지만 최종적으로 225억의 세금을 내게 돼 뭇 사람들의 탄식을 자아냈었다.
법무법인 충정의 최우영 대표변호사(56·사법연수원 15기)는 이러한 황 씨의 사건에 1심부터 관여해 급기야 지난 4월, 대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7년 넘는 시간을 매달려 일구어낸 이번 결실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본지가 최우영 변호사를 만나봤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충정에서 만난 최우영 변호사는 이번 황필상 씨 사건 이외에도 역대 최대 규모인 ‘5조원대 고엽제 손해배상소송’을 수행한 경험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 밖에 예비 법조인들에게 주는 조언과 그의 경쟁력에 대한 부분, 나아가 집단소송법 도입에 대한 견해까지 들어볼 수 있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황필상 씨 사건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7년 넘는 소송의 과정을 개략적으로 듣고 싶다.
2009년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공익소송을 담당하시는 분이 이 사건을 우리에게 의뢰했다. 사회적으로 상당히 의미있는 소송이라고 생각하고 뜻깊게 시작했다. 2009년 12월 수원세무서장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후 7개월 만에 1심 판결에서 원고 전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서울고법 판결에선 패소했고,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에 대법원에 상고한 지 5년 만인 지난 4월,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취지 파기환송을 받았다. 아직 파기환송심에서 두어번 재판이 더 예정되어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취지대로 승소판결이 나올 것을 확신하고 있다.
-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된 사건인가.
우리 법이 대체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지 않나. 청탁금지법도 그렇고,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면 법으로 원천 차단하려 한다. 사건에서 문제가 된 상속세법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도 마찬가지다. 상증세법 제48조 1항은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에 대하여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그 단서에서 증여의 대상이 주식인 경우에는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예컨대 기업 오너 등이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 출연 방법으로 공익법인을 내국법인에 대한 지배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회피하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경우들을 막고자 한 규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황필상 씨가 부의 세습, 경영권 세습과는 전혀 무관하게 장학사업을 위해 선의로 장학재단에 출연한 경우라는 것이다. ‘수원교차로’ 창업주인 황필상 씨는 수원교차로 주식의 거의 전부인 180억 원 상당 주식을 모교인 B대학에 기부하려 했으나 대학에 법인격이 없어 별도의 비영리재단법인(구원장학재단)에서 주식을 인수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수원세무서장은 기계적으로 상증세법을 적용해 140억 4100여만원의 증여세를 부과했고, 대법원 계류 중에는 재단의 연대책임자로서 미납된 증여세에 대해 가산금 100억원을 더해 총 225억의 세금을 부과했다. 180억을 기부한 사람에게 세금을 225억 내라고 했으니 ‘세금폭탄’을 때린 것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선의의 기부행위를 보호하기 위하여 어려운 판결을 내린 것이다. 판결문을 보면 알겠지만, 세법 조문의 해석은 여러 가지로 가능한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선의의 기부행위를 구제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법해석을 한 것이니 정말 의미있고 중요한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 이에 대한 판결이 1심부터 대법원까지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는데. 대법원에서도 3명이 반대의견을 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세법 조문의 해석은 조세법률주의에 기하여 문리해석을 해야 하지만, 실질과세의 원칙도 고려해 구체적 타당성도 기하여야 한다.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 사이에서 조화로운 해석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세정의도 실현해야 하지만 억울한 납세자도 구제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반대의견이 나온 것이다.
판결이 널뛰기인 것은 변호사 입장에서 ‘드라마틱하게 승소했다’는 등의 말로 미화되곤 한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정의와 진실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으로 보일 수가 있다. 미국법원에서는 비율로 보면 1심의 비중이 거의 80% 이상이고, 항소심이 20% 정도에 불과하며, 대법원은 상고가 제한되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만이 상고허가되어 심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1심 재판에서 사건이 충실하게 심리되어 판결이 나고 항소심은 1심 판결에 큰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만을 사후적으로 살핀다. 우리처럼 1심 법원이 재판하고, 항소심에서 사실심리를 다시 하여 결론을 번복하고 대법원이 재차 판단하는 식의 구조는 비합리적이고 당사자의 권리구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재판의 장기화 문제로도 연결된다. 28년 변호사 경력을 가진 나조차 이 사건으로 소송을 7년 하면서 ‘법원은 이제 웬만해선 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당사자는 오죽하겠는가. 판사들은 1,2년마다 보직이 변경된다. 소송 기간이 길어지면 내 사건을 맡는 판사도 계속 바뀌는 것이다. 누군가 하다 넘긴 판결, 내가 하다 넘길 판결이면 아무래도 의미가 다르지 않겠는가. 그런 판결을 받는 입장에서도 썩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법원은 개개 사건에서는 비교적 신속하게 판결을 하는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렇게 장기적인 판결이 나오는 문제점이 있다.
- 이번 승소판결의 의미를 정리해 준다면.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금이 아니라 주식을 공익법인에 기부한 경우 증여세 부과에 관한 여러 기준을 제시한 의미 있는 판결이다. 이전과 달리 요즘은 주식이 기부 대상으로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기업에 대한 지배력까지 담고 있는 주식 기부에 대한 여러 쟁점을 짚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본다.
우리 법원은 대체적으로 목적론적 법해석보다는 법조문의 해석만 고집하여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다보니 이번 사례처럼 구체적 타당성 측면에서 불합리한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편법을 근절하려는 법이 선의로 기부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는가. 이번 대법원 판결로 기부에 장애가 되는 요소가 걷히고 기부문화가 한층 장려되기를 기대한다.
- 직접 맡았던 대표적인 소송으로는 ‘5조원 고엽제 소송’이 있다. 미국의 화학회사를 대리했는데. 사건을 맡게 된 계기와 개략적인 소개를 해달라.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인 1만 7천여명이 1인당 3억 원씩 미국의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전체 소가가 5조원 규모였던 소송이다. 소송규모만으로도 역대 최대이고 17년간의 재판 끝에 승소한 소송이기에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된 소송으로 꼽고 있다.
소송을 맡게 된 계기로는, 충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법무법인인 ‘김장리’에서 나를 비롯한 일부 구성원들이 1993년도에 설립했고, 설립 초반부터 외국 기업이 주 고객이었다. 소송의 피고인 미국 회사 역시 충정을 선택하여 고엽제 소송을 위임했다.
당시 정말 바빴다. 소송의 규모도 규모지만 수만건의 문서를 검토하여 소송준비를 했다. 법률적인 쟁점으로 국제법규 위반, 환경침해, 제조물책임 법리의 검토 등 대응할 문제가 많았고, 전세계 각국에서 다이옥신 전문가, 화학자, 생물학자, 의사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회의를 하기도 했다. 1심에서는 원고들이 패소했으나 2심에서는 제조물책임의 법리가 인정되어 원고들이 일부 승소했다. 그 다음 2013년 대법원에서 인과관계를 부정해 원고들이 최종 패소했다. 이 소송은 17년이 넘게 걸렸다.
- 우리 사법제도하에서 이 사건이 판결로 종결된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인데.
집단소송법이 있는 미국에서는 원고 20만명이 넘는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고엽제 피해 소송을 7년 만에 완전히 정리했다. 뉴욕주 동부지방법원의 와인슈타인 판사가 전국에 제기된 소송을 모두 병합시켜 소송(Trial) 전에 양측을 합의시킨 것이다. 이렇게 미국, 호주, 뉴질랜드 참전군인들이 미국 고엽제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은 큰 틀에서 조기 종결됐다. 1980년대 중반이었는데, 우리나라에는 당시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차이가 크지 않나. 우리는 17년이 걸리고도 원고들이 패소해서 아무 배상 못받은 데 비해 미국에서는 7년만에 1억 8천만 달러를 받기로 합의하고 사건이 종결됐다. 이 합의금은 법원의 감독하에 기금으로 만들어져 2억 4천만불로 늘어나 참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금, 치료비 등으로 지출됐다.
고엽제소송 진행 당시 우리나라는 아직 집단소송법이 제정되지 않았고 우리 법원이 미국 법원과 같은 정도의 광범위한 재량권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들로서도 한국군 참전자들과 일괄적인 합의를 하기 어려웠다. 우리 법원은 회사의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손해배상을 하는데 인색한 점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고엽제소송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이 일방적인 판결로 종결된 점은 원피고의 입장을 떠나 아쉬운 점이 있다.
- 국제소송과 중재, 기업 및 상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소위 ‘국제통’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분야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쌓았는가.
일단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한 것은 당연하다. 2000년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가진 것도 원인이 됐을 것이다. 그에 더하여 기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일찍부터 법무법인 충정이 렉스먼디(Lex Mundi)의 회원사였던 것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전세계에는 각국의 로펌연합체들이 20여개 있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네트워크가 활발한 것이 렉스먼디다. 충정은 1993년부터 렉스먼디에 가입했고 나는 아태지역 부의장으로서 아시아 지역은 물론 미국, 유럽 등의 로펌 변호사들과 국제소송, 중재분야에서 교류를 해왔다. 텍사스 휴스턴에 본부가 있는 렉스먼디는 리더십 회의, 연례회의, 마케팅 회의, 실무그룹 회의 등 회원사들 간 다양한 미팅을 갖는 등 로펌의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로펌들과의 교류에서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소송, 분쟁처리, 자문 등의 업무를 맡아 처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변호사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급하고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는다는 인식과 관례가 확립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외국기업의 일을 많이 해 왔다.
- 예비법조인들에게 힘이 될 조언을 해 준다면.
충정은 오래 전부터 변호사를 채용함에 있어 외국어능력을 중요하게 봤다. 최근에 들어온 신입변호사를 보니 중국 북경대학을 나오고 한국 로스쿨을 졸업한 학생,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오고 한국 로스쿨을 졸업한 학생 등이 있더라. 이런 친구들의 외적 경쟁력이라든가 외국어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그러나 로스쿨 체제 이후 법률가들의 외적 경쟁력(소위 스펙)이 지나치게 상향 평준화 된 것이 아닌가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웬만해서는 나를 드러내기 힘들고, 또 웬만해서는 그 대열에 끼기도 어려워졌다.
그래도 법률가로서의 기본은 리걸 마인드다. 다양한 자기 영역의 능력을 특출나게 갖추었어도 법률가인 한 리걸 마인드가 바탕에 깔리지 않고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법적 문제 해결과 법해석을 위해서는 사안을 법적으로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리걸 마인드가 없으면 사안 자체를 엉뚱하게 보고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리걸 마인드를 기르기 위해서는 기본법에 대한 풍부하고 심도있는 지식이 중요하다.
요즘 예비법률가들을 만나보면 ‘변호사로서 어느 분야로 나가야 전망 있을지’를 많이들 물어본다. 그러나 예비법조인들은 그런 걸 따질 때는 아니다. 일단은 분야 상관없이 법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 다음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분야를 자기 것으로 연마해야 한다. 이 분야가 전망 좋다고 여기 기웃거리고 저 분야가 좋다고 저기 기웃거리는 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기가 실력을 기른 전문분야는 능력여하에 따라 충분히 사회에 쓰일 수 있고, 언젠가는 각광받는 때가 온다.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실력을 연마하길 바란다.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이영화 기자
김주미 기자 hova@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