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한 정보

효 이야기

양곡(陽谷) 2014. 11. 18. 23:21

Subject: 효 이야기
 

전주이씨 이충작이라는 사람은 부모의 상중에 너무 울어 실명을 했는데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부모 묘소를 돌보는 일을 하루도 빠진 적이 없었다.
임금이 그 효행을 듣고 승지 직책을 내리자 대신들이 장님 승지란 있을 수 없다 하여 반론을 제기하였고 왕은 교지를 내려 “대신들은 그의 보이지
않는 눈을 미워하지만 나는 그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사랑한다.
정치는 눈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것이다.” 그 후 장님 승지는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는 데 고금에 장님 감사는 이충직이 유일하였다.
이 후 그의 후손들은 지금도 상중에 장님행세를 하고 있다고 한다.
 
민손이라는 사람의 계모는 추운 겨울 자기 소생의 두 아들에게는 두툼한 솜옷을 입히고 전실 자식인 민손에게는 갈대 옷을 입혔다.
관가에 나가려고 아버지가 수례를 끌어 오라 하자 수례를 잡은 민손의 손이 하도 떨려서 수례마저 떨렸다.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계모를 집에서 쫓아내려 하자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춥되 어머니가 나가시면 세 아들이 다 춥게 됩니다.
라고 민손이 만류하자 계모가 이 말을 듣고 감복하여 다시는 민손을 구박하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효를 가르치기 위한 교과서였던 세종 때 편찬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1434)에 나오는 글입니다.
 
팔에 힘이 없어진 노모가 밥그릇을 자주 떨어뜨려 깨는 일이 잦게 되자 아들과 며느리는 구박을 하면서 노모에게 개밥그릇에나 써야 할 나무그릇에
밥을 퍼드리곤 하였다.
어린 손자는 할머니가 너무 불쌍하여 썩은 나무토막을 주어다가 나무속을 칼로 파고 있었다.
아들의 하는 일이 의아해서 아이의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어린 아들이 대답했다. “나중에 아빠 엄마가 늙으면 사용하려고 나무밥그릇을 만들고 있어요.”
이 말을 들은 아이의 못난 부모들이 다시는 노모를 구박하지 않고 같은 식탁에 모시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송의 ‘지략의 귀재’에 나오는 글입니다.
 
어버이에 대한 효도는 자식의 의무이며 동시에 자식들에게 효를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책무입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이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배근 교수(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