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

브래지어 외 4 편의 시

양곡(陽谷) 2009. 6. 13. 09:48

1.브래지어 


                     박영희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웅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죤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2.엄마와 시어머니 

 - 청계  박원철 -

 

 

어렸을 때 엄마가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더냐"고

꾸중할 때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네 집에서

그렇게 가르치더냐"고

나무라자

 

세상이 까매지도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2.겨울-나무로부터-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일러스트=잠산     
 
  

황지우(56) 시인의 다른 시 '손을 씻는다'를 함께 읽는다.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라고 표현했듯이 사람은 한 점 오점 없이 살 수는 없다.

저질러가면서 우리는 산다.

좌충우돌하면서 난동을 부리면서.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시대가 진화해가는 것은 우리가 내부적으로 가진 자기 반성과

좀 더 나아지려는 희망의 추구 같은 것 때문이다.

이 시는 솔직하다.

나무는 꼭 나무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헐벗고 무방비이고, 때로는 벌 받고, 긴가민가 하는 사람으로 읽어도 좋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라고 중얼중얼할 줄은 아는 사람이다.

아주 숙맥이거나 속물적이지는 않아서

현재의 환멸을 볼 줄은 아는, 앙가슴이 뛰는 그런 사람.

 바깥 세상이 영하인지 영상인지 구별할 줄 알아

 드디어 버틸 줄도 거부할 줄도 알게 된 사람.

 마침내 싹도 잎도 틔우면서 불쑥 기립하여 봄의 나무가 된 사람.

자력의 운동성을 가진, 스스로를 혁명하는 사람.

자기 몸을 쳐서 바다를 건너가는 새 같은 사람.

의지의 사람… 우리는 이런 봄나무를 기다리는 것 아닌가.

황지우 시인은 1980년대를 날카로운 풍자로 노래했다.

그는 1980년대의 독재와 살해와 검열에 맞선 '시의 시국사범'이었다.

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시대가 우리를 건드렸다"고 표현했는데,

그의 시는 권력의 중증(重症)을 처절하게 해체하려한 양심이었다.

설령 그가 시 '뼈아픈 후회'에서

 

"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다

(…)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라면서  그의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있지만,

이 혹독한 자기 검열의 고백이 황지우 시의 미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시대와의 불화와 선적(禪的)인 기개를 넘나드는 그의 시는 한국시사에서

푸릇푸릇한 '방풍(防風)의 대밭'이다.

 

 

 

 

4. 바람생각        

 

  - 이정하 -               

   


바람은 왜 부는지 묻지 않고 분다.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묻지 않고
그저 몸가는 대로 흐를뿐이다.
내 그대를 사랑함에도 별 다른 이유가 없다.
그저 좋으니 사랑할 밖에
그저 사랑스러우니 사랑할밖에

그러니 그대 내게, 왜 사랑하는가 묻지 말라
어떻게 할 건가도 묻지 말고 그저 흘러가는대로
내 사랑의 바람의 바람이 부는대로 몸을 맡겨보라

바람 속을 걸을 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 바람에 온전히 자신의 몸을 맡길때가 가장 편한 법이다.
바람을 거슬러 걷는다든가
바람과 걷는 속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힘겨울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그대여
내 사랑을 거스르려 하지 마라.
내 마음이 흔들려 이는 바람이
그대에게 가닿으면 외면하지 말고,
눈살 찌푸리지 말고 기꺼이 맞아다오.

바람이 왜 부는지 묻지 않고 불 듯
내 그대를 사랑함에 이유가 없으니..



 

 

 

 

바람(하모니카 연주).....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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