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준공식은 “해봤어?”라고 물었던 정주영에게
하늘이 해 준 대답이었다.
그해 첫 선박 명명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와서
현대중공업 본관 앞에 ‘조선입국(造船立國)’ 이라고 썼다.
‘우리도 배를 만들어 먹고 살고 나라를 지켜보자’
는 비원(悲願)이었다.
그로부터 33년 뒤인 지난 5월 25일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도크에서 우리 해군의 이지스함이 진수됐다.
정주영이 처음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해군은 미군이 버리다시피 한 구축함에
페인트칠을 해서 쓰고 있었다.
천지개벽이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지스함 진수식을 며칠 앞두고 현대중공업을
찾아 볼 기회가 있었다.
1987년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노사분규 취재 때문이었다.
그때 정주영은 노조원들에게 우산대로 몸을 찔리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20년 전 그때 그 자리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신천지를 바라 보았다.
세계의 선주(船主)들이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황량할 정도로 넓었던 미포만이 이제 배 조립품을
놓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비좁아졌다.
거기서 2.5일마다 1억 달러짜리 거대한 배 한 척씩이 쏟아진다.
현대중공업 사람들은 “배를 찍어낸다”고 했다.
세계 조선 역사에 없던 일이다.
지금 전 세계 바다에 새로 나오는 배 5척 중 1척이
현대중공업 제품이고, 10척 중 4척이 한국산이다.
한국 조선소들은 중국이 만드는 싼 배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래도 주문이 너무 밀려 배를 지을 도크가 없다.
길이 200m에 15층 높이의 배를 땅 위에서 조립해
바다로 끌고 가 띄운다.
이런 신 공법은 거의 모두 한국 조선소에서 나오고 있다.
선박 엔진을 만드는 공장의 상무는 이 기술자들을
“나라의 보물”이라고 했다.
이들이 세계 엔진 시장의 35%를 싹쓸이하고 있다.
이지스함에선 아직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