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기 싫은 77가지 이유』
교회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이 교회 가기 싫은 이유 39가지와
교회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의 교회 가기 싫은 이유 38가지를 열거한다.
교회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의 경우,
1. 노방전도의 모습이 싫다.
2. 여유가 없다.
3. 말 많은 전도사가 싫다.
4. 부자 교회가 싫다.
5. 믿을 건 나 자신뿐이다.
6. 술 담배도 아예 못하는 것이 싫다.
7. 종교가 미신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8. 타종교 타종파에 대해 너무 배타적이다.
9. 종교 없이도 별 불편함이 없다.
10. 부모님이 반대하신다.
11. 조용한 교회가 없다.
12. 교인 아니면 다 사탄인가?
13. 기독교는 외래 문화이다.
14. 광신도들의 광적 행태가 무섭다.
15. 허황된 성경 이야기를 어떻게 믿겠는가?
16. 팔자 편한 사람들의 교회지.
17. 동정녀 마리아 잉태가 이상하다.
18. 건축헌금이 무섭다.
19. 세상 문화를 사탄으로 매도하다니.
20. 무교회 종교론에 공감한다.
21. 꼭 교회에 가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22. 광란의 기도원 풍경이 혐오스럽다.
23.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는 거짓말이 싫다.
24.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못 믿겠다.
25. 종교생활로 말미암는 각종 제약이 싫다.
26. 교회의 요구사항이 뻔하다.
27. 무전여행 때 냉대 당했다.
28. 목사 결혼 세속적이다.
29. 현찰로 돈 내면 천당서 갚는다고?
30. 유흥업 하는데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있겠는가?
31. 부흥회 가보고 어이 없었다.
32. 형제 자매 장로 집사 호칭이 싫다.
33. 가정 파괴 광신도를 봤다.
34. 세무 조사 반대 이해할 수 없다.
35. 양보 모르는 압력집단이다.
36. 죽은 후 천당에서 영생한다고?
37. 붉은 십자가가 너무 많다.
38. 개척 교회의 과잉 경쟁이 싫다.
39. 신체 장애 때문에 안 간다는 등의 이유가 열거되고,
이어서 교회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의 경우,
40. 각종 모임 참석에 대한 강요가 많다.
41. 기업화된 교회의 위화감이 싫다.
42. 빈민 구제를 외면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43. 교회에 쓸 만한 총각이 없다.
44. 감사할 줄 모르는 탐욕 메카니즘이 싫다.
45. 교회에서 진짜 신앙인을 보지 못했다.
46. 교회는 또 하나의 계급 사회이다.
47. 교회는 고리타분하다.
48. 양보없는 일등주의 세속성이 싫다.
49. 세상과 타협하는 기회주의가 싫다.
50. 교인들은 재미가 없다.
51.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겁준다.
52. 헌금 명단 공표는 속보인다.
53. 일요일에 늦잠 잘 수 없다.
54. 자유로운 모험 정신을 억압한다.
55.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56. 목사 수준이 낮은 것 같다.
57.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나?
58. 교회의 종파 분쟁을 이해할 수 없다.
59. 이중 인격자가 많아 싫다.
60. 헌금따라 사람 대접이 달라서 싫다.
61. 교회의 단순 논리는 사고력을 퇴행시킨다.
62. 마음 터놓을 깊은 친구가 없다.
63. 진화론을 부인하는 교리를 믿을 수없다.
64. 교회에서 연애를 많이 한다.
65. 엉터리 목사가 많다.
66. 뭔가 달라야 한다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67. 교회 비판 함구는 불문율인가?
68. 사기꾼 목사를 봤다.
69. 예수는 좋지만교회는 싫다.
70. 능력 이상의 직분을 강요한다.
71. 꼴보기 싫은 사람들이 많다.
72. 이성 교제 제약 받는다.
73. 음치라서 찬양이 재미없다.
74. 지옥 협박 고립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
75. 자신의 이중생활이 가책스럽다.
76. 아전인수 자기합리화 도구.
77. 신분차별 때문에 벽을 느꼈다는 등의 이유들이 열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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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회가기 싫은 77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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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밥퍼 목사님이 들은 음성
밥퍼 목사로 잘 알려져 있는 최일도 목사님은 거리의 노숙인들에게 20년 가까이 무료로 밥을 퍼주고 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빈민구제나 사회정의구현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일로 유학을 가서 학위를 마쳐 큰 교회의 목사가 되거나 교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던 야심만만한 젊은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1988년 초겨울 그의 인생행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청량리역 광장을 지나다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지만 도와드릴 생각을 못하고 일정대로 춘천행 기차를 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최 목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앞에서 쓰러진 그 할아버지가 한밤이 될 때까지 그대로 누워있었던 것입니다.
"일도야, 언제까지 차가운 길바닥에 나를 눕혀 놓을 테냐."
나지막한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이 낯선 목소리는 자신의 소명이 이 땅에 있음을 깨달게 했습니다.
그가 버너와 코펠을 들고 광장에 앉아 끓인 라면을 먹기 위해 40여명의 걸인이 몰려들었습니다.
지난 18년간 계속된 '밥퍼식당'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작년 한해에만 무려 1만 7천명에 달합니다. 또 매월 1만원씩 후원하는 5800여명의 손길로 2002년 병원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만 실시하던 무료 진료소가 이제는 개신교 첫 무료 병원인 '다일천사병원'으로 이어졌습니다.
"병원에 찾아가 수술비가 없어도 쫓겨나지 않고 아픔을 치유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땅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돈이 없는 환자에게 '왜 왔느냐'고 물어선 안 됩니다. 치료부터 해준 다음, 돈이 없다고 하면, 그 다음은 사회복지사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요."
그는 말합니다. "민간의 후원은 언제나 환영하지만 정부에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화원 아저씨들이 꼬깃꼬깃 모은 돈을 들고 오시는데 그런 분들의 정성이 하나씩 모여서 공동체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다일공동체는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대다수 한국 교회들이 예배당을 먼저 짓고 남은 돈으로 이웃 을 돕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른 것입니다."
남을 위해 선을 행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변치 않고 그 선행을 계속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밥퍼 목사님은 우리가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실천하신 분이므로 더 존경스럽고 본받아야 할 모범이라 생각합니다.
- 정 충영 경북대 명예교수님, '남산 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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