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won't be easy,
you'll think it strange
When I try to explain how I feel
That I still need your love
after all that I've done
You won't believe me
All you will see is a girl you once knew
Although she's dressed up to the nines
At sixes and sevens with you
I had to let it happen,
I had to change
Couldn't stay all my life down that hill
Looking out of the window,
staying out of the sun.
So I chose freedom
Running around trying everything new
But nothing impressed me at all
I never expected it to
Don't cry for me Argentina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All through my wild days
My mad existence
I kept my promise
Don't keep your distance
And as for fortune, and as for fame
I never invited them in
Though it seemed to the world they were all I desired
They are illusions
They're not the solutions they promised to be
The answer was here all the time
I love you and hope you love me
Don't cry for me Argentina
Don't cry for me Argentina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All through my wild days
My mad existence
I kept my promise
Don't keep your distance
Have I said too much?
There's nothing more I can think of to say to you
But all you have to do is look at me
to know that every word is true
쉽지 않으실 거예요,
이상한 생각이 드시겠죠
제가 이렇게 제 기분을 설명하려고 하면
제가 그 모든 짓을 하고서도 아직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하면요.
절 믿기 힘드실 거예요
여러분이 보시는 건 예전의 그 여자일 뿐이에요.
지금까지 아주 잘 차려 입고
여러분과 사사건건 맞지 않았던 여자였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전 바뀌어야 했어요
저 언덕 아래서 창밖이나 내다보면서,
햇볕도 들지 않는 곳에서 평생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를 택했습니다
새로운 건 뭐든지 해보려고 뛰어 다녔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저 때문에 울지 말아요, 아르젠티나여.
저는 진심으로 그대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어렵고 힘든 세월들 속에서
미친 듯이 살아 왔지만
전 언제나 그대와의 약속은 지켰습니다
저를 멀리 하지 말아 주세요.
재물과 명성으로 말하자면
제가 불러들인 적이 없어요.
세상 사람은 그것들을 죄다 제가 탐낸 걸로 보겠지만
그것은 전부 환상일 뿐입니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말이 전부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답은 늘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도 저를 사랑해 주시라는 것입니다.
저 때문에 울지 말아요, 아르젠티나여
저 때문에 울지 말아요, 아르젠티나여
전 여러분을 떠난 적이 없어요.
저는 험하게 살고 미친 듯이 살아 왔지만,
약속은 늘 지켰어요
저를 멀리 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했나요.
여러분에게 할 말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저를 보고 이 점만 알아주시면 돼요.
제가 한 말은 다 진실이라는 걸요.
에비타 에바 페론 ( Evita Eva Peron, 1919-1952, 아르헨티나 )
-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 에비타 -
에바 페론(Eva Peron)은 1919년 아르헨티나의
대초원(팜파스)의 시골 마을 로스 톨도스(Los Toldos)에서
농장 주인과 농장의 요리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에바의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던 농장주와의 사이에서
사생아 다섯을 낳았는데 에바는 그 중 네번째 아이였다.
에비타는 사생아로 태어나 어려운 생활로 밑바닥 생을
전전 연극배우와 라디오 성우를 거쳐 페론을 만난다.
만난 뒤에는 지나간 이력이 무색할 만큼 아름답고
총명하면서 야심까지 가득한 페론의 여인이 된다.
그녀의 나이 25세 때 그녀보다 나이가 2배 가량 많았던
육군 대령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한동안 밀회를 즐기다가 곧 두 사람만의
은밀한 방을 구해 장기적인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연인이 출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준 정부(情婦) 에바에게
새삼 사랑과 신뢰를 느낀 후안 페론은 죽는 날까지
함께 하기를 맹세하고 결혼한다.
페론은 1946년 2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54%의
지지를 얻으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페론이 집권 초기에 이렇듯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식량 수요 증가로
농축산물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벌어들인 외화 덕분이었다.
이런 호황 속에서 추진된 개혁 입법들은 퍼스트 레이디였던
에바의 입김 속에서 추진된 일들이었고, 노동자와 여성,
빈민들은 그녀를 성녀로 떠받들기 시작했다.
이 아름답고 총명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우호적인
그녀에게 열광했고 적극적인 지지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었다.
에비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어서
학교, 병원, 고아원을 단기간에 전국에 건립했고,
그녀의 이름을 딴 병원 기차가 의료장비를 싣고
전국을 누비면서 무료 진료를 실시했다.
또한 에비타 재단은 지진 등 재해를 당한 나라에 거금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콜롬비아, 에콰도르 같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도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정책 덕분에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이런 위세를 등에 엎고, 심지어는 초등학교에서
매주 페론 부부를 찬양하는 글짓기 숙제를 하도록 했으며,
스페인어 수업 시간에는 에바의 자서전을 교재로
채택하도록 하기도 했다.
에바 페론은 단순히 퍼스트레이디로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데 상징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정계의 핵심
요직에 올라 명실상부한 권력 2인자에 오르고자 애썼다
일명,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더 널리 알려진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을 표현하는 말 중에서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라는 말보다
그녀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실제 그녀는 가진 자에게는 더할 수 없이 표독한 영부인이었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자상한 나라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에바 페론은 국가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수많은 일들을
초인적으로 처리해갔다.
수없이 많은 모동자, 빈민, 여성들을 만났고,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었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그들을 조직화하여 남편의 정치적 동지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하늘은 에바 페론의 영광을 시기했을까,
고군분투하던 에바 페론은 1952년 척수백혈병과
자궁암으로 쓰러지고 만다.
이때 그녀의 나이 34세였고,
후안 페론을 만난지 10년만의 일이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큰 국장으로
한달 간 성대히 치러졌다.
이 후 그녀의 남편 페론은 아내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미라로 만들었다.
페론의 집권으로 한 순간에 퍼스트레이디로 변한
에비타는 가난이 한이 되어서일까. 빈민노동자천국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구상, 국가정책의
최우선순위가 빈민구제였고 국가의 모든 재정을
노동자들을 위해 퍼부었다.
아나운서출신이었던 그녀는 명연설가로 아르헨티노들의
심금을 울렸는가 하면 파리 패션계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살다가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에바의
생애는 가히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삶이었다고 할 것이다.
평소 영국의 의적 로빈 훋의 열 열한 신봉자였던 에바는
남편인 후안 도밍고 뻬론을 제치고 정권을 쥐고 흔들어
당시 세계최고의 권력을 가진 여성으로 희자 되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한 시사주간지 타임은 두 번이나 에비타를
표지의 인물로 선정할 정도였다.
에바는 "빠라 뻬론"(뻬론을 위하여) 라는 명분을 내세워 기
업가들이나 부유층의 재산을 탈취 빈민노동자들에게 무상분배해
줌으로써 성녀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 농민들의 천국을 만들겠다던 신념과는 달리
당시 전세계 상류사회 여성들의 유행을 이끄는 호화스런
사치와 낭비는 아르헨 식자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에바가 유럽여행을 할 때면 유럽의 패션가가 후끈
달아오를 만큼 자신의 몸치장에 최고만을 고집을 했고 유럽의
사교계는 ‘에바 패션’이 유행되는 추세까지 보였다는 것이다.
또한 무작정 국가재정을 끌어다 무 주택 빈민들에게 아파트를
지어주어 서민들을 감동시켰고 누구나가 무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종합병원 등을 각 지역마다 세워 초일류 복지국가건설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정부 공공지출을 눈덩이처럼 키워 아르헨티나가
오늘날 외채에 허덕이는 3류국가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에비타로 부터 시작된 포퓰리즘이 아르헨 국민성을
망쳤다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그녀의 유언장 마져도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그녀가 진정 아르헨티노들을 위한 '산타 에바'(거룩한 에바)
였나를 놓고 열띤 논쟁이 일고 있다.
시내중심가 레꼴레타 지역의 그녀의 묘소에는 아직까지도
매일 추모 행열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아르
헨티나가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국민모두가 하루빨리
에비타의 망령에서 벋어나야 한다"는 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에비타를 세계적 인물로 부상시킨 것은 뮤지컬이다.
뮤지컬이 없었다면 에비타는 영원히 아르헨티나에 국한된
성녀로 남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웨버가 사후 30년만에
그녀를 세계적 민권운동의 성녀로 환생시킨 셈이다.
'에비타'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에서는 인기 여가수 마돈나가 당시 임신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연을 펼쳐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 | |
출처 : Don`t cry for me Argentina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