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공부

저녁에는 울음, 아침에는 기쁨”: 울음은 주인이 아니라 손님

양곡(陽谷) 2026. 9. 2. 09:30

“저녁에는 울음, 아침에는 기쁨”: 울음은 주인이 아니라 손님

말씀: 시편 30편 5절(맥체인 성경읽기, 8월 21일, 금)

인생에는 저녁이 있다. 건강이 무너지고,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대답이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 우리 마음에도 해가 진다.
믿음이 있다고 저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편의 시인도 울었다. 잠깐 눈물을 흘린 정도가 아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라고 그는 말한다. “깃들다”는 “밤을 묵다, 유숙하다”라는 뜻이다. 울음이 찾아와 밤새 우리 곁에 머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시인은 결정적 한마디를 덧붙인다.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1. 울음도 우리 인생에 머물 수 있다

성경은 신앙인을 언제나 웃는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다. 다윗도 울었고, 예레미야도 울었으며,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요 11:35). 눈물은 믿음 없음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했다는 증거요, 아직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시인은 죽음의 그림자, 곧 스올까지 내려갔다(시 30:3). 그러므로 “아침에는 기쁨이 온다”는 말은 고통을 모르는 값싼 낙관이 아니다. 어두운 밤을 온몸으로 통과한 사람의 증언이다.

2. 울음은 ‘하룻밤 묵는 손님’이다

이 시편의 가장 깊은 통찰은 “울음이 깃들다”는 표현에 있다. 울음이 찾아와 그 짐을 풀고 자리를 잡는다. 어떤 밤에는 쉽게 떠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울음은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다. 이것이 시인이 발견한 복음이다.
5절에는 놀라운 시간의 비대칭이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이지만 그의 은총은 “평생”이다. 진노는 하나님의 낯선 얼굴이지만, 은총은 그분의 본래 얼굴이다.
바울도 같은 고백을 한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밤이 아무리 길어도 밤에게는 아침을 막을 권한이 없다.

3. 아침의 기쁨은 하나님이 가져오신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11)
문장의 주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슬픔을 춤으로 바꾸셨다. 하나님은 눈물을 닦아 주시는 데 그치지 않고, 바로 그 눈물 흘렸던 자리에서 새 노래를 시작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순한 원상복구가 아니라 창조적인 뒤집기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기쁜 아침은 부활의 아침이다. 금요일 저녁 제자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무덤에서 전혀 다른 아침을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 16:20).
십자가는 눈물을 지우지 않았다. 그러나 부활은 그 눈물이 마지막 말이 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시편 30편의 “아침”은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언어, 곧 부활의 언어가 된다.

마무리하며
오늘 우리의 저녁이 길게 느껴진다면 이 시인처럼 기도하면 어떨까?
“주님, 오늘 밤 이 울음이 손님으로만 머물게 하시고, 이 집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소서.”
시인의 춤(11절)은 고통을 잊은 사람의 춤이 아니다. 고통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더 크다는 것을 몸으로 고백하는 춤이다. 저녁이 길다고 아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무덤도 하나님의 아침을 막지 못했다.
울음은 저녁에 묵을 수 있다. 그러나 아침의 주인은 언제나 하나님이시다.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인생의 저녁이 찾아올 때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눈물은 흘리되, 이 울음이 내 집의 주인 노릇하지 못하게 하소서.

십자가의 밤을 부활의 아침으로 바꾸신 하나님
우리의 베옷을 벗기시고 다시 주님을 찬송하게 하옵소서. 아멘.

추기: 오늘 맥체인 성경읽기는 시편 30편(내일 토요일 본문)을 하루 앞서 묵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