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내 덕', 과실은 '남 탓'… 부하 뒤에 숨는 '유체이탈' 리더십
오랜 직장 생활을 거치며 수많은 상사를 겪었지만, 조직원들에게 가장 큰 환멸을 주는 대표적인 상사 유형이 있다. 평소엔 온갖 생색을 다 내다가 막상 일이 틀어지거나 결과가 나쁘면 모든 책임을 부하 직원에게 돌리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상사다.
상사의 업무지침대로 따라서 잘된 일에는 "거봐라, 내가 하라는 대로 하니 잘되지 않느냐"라며 실무자의 공까지 제 것인 양 독식한다. 그러나 지시대로 이행했음에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터지면 태도가 180도 바뀐다. "나는 제대로 지침을 줬는데 너희가 말귀를 못 알아들었다",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일을 망쳤다"라며 화살을 아래로 돌린다. 지시는 자기가 내려놓고 나쁜 결과에 대한 비난과 책임은 전적으로 부하 직원의 몫으로 남겨두는, 전형적으로 비겁하고 질 나쁜 리더십이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정부 부처 간에 벌어진 양상을 보며, 나는 과거 직장에서 겪었던 그 무능하고 비겁한 상사들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여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2026년 8월 11일 자 한 언론의 보도 <"대통령 모르는 세제개편안, 나올 수 없어" 전 세제실장들 '쓴소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 및 상황점검회의에서 최근 발표된 세제개편안을 두고 재경부를 강하게 질책하며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편 및 주가 누르기 방지법 등에 대해 "본래 취지를 왜 못 살렸는지", "정확한 준비 과정을 거친 것이 맞는지"를 언급하며, "재경부 장관은 무조건 기어서 다니라"는 뼈 있는 발언까지 던졌다.
그러나 정부 행정 절차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라면 이 질책을 결코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다. 기사에서 전직 세제실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듯, 정부의 핵심 공약이나 대형 세제 개편은 발표 전 최소 2차례 이상 청와대에 정식 서면 보고되고 지시 사항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친다. 6~7월 사이 재경부 세제실이 청와대를 수시로 찾아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검토받았음에도, 막상 국민적 반발과 여론 악화가 터지자 대통령과 청와대는 마치 자신들은 몰랐던 일, 실무진이 대통령의 지침을 잘못 이해하고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인 양 행세하며 재경부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전직 세제 담당자들의 말대로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이자 유체이탈 화법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본래 취지를 왜 못 살렸나", "준비 과정을 제대로 거친 것이 맞나"라는 식의 언사는 직장 생활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답답하게 들어본 책임 회피용 발언의 결정판이다. 나는 완벽하게 지시했는데 너희가 일을 그르쳤다는 변명이다.
이러한 화법의 비겁함은 성과가 있을 때와 부작용이 터졌을 때의 극명한 태도 변화에서 극에 달한다. 불과 얼마 전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탈 때 청와대는 뭐라고 했던가. 기업들의 오랜 투자와 뼈를 깎는 혁신, 그리고 천운처럼 다가온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분에 찾아온 결실마저 마치 "코스피 5,000포인트 공약 이행 의지와 정부의 주가부양 정책 덕분"이라며 자신들의 치적으로 포장하려 들었다. 현장에서 산업을 일군 기업과 실무자들의 노고는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그늘 아래 묻혔다.
시장이 좋을 때는 기업의 피땀과 시장의 호재까지 '대통령 덕분'이라며 온갖 생색을 내더니, 막상 어설픈 세제 설계로 민심이 돌아서고 여론이 폭락하자 "아랫사람들이 본래 취지를 못 살렸다"며 부하 직원들에게 화살을 돌린다.
리더가 결정의 과실을 실무자에게 전가하고 비겁하게 뒤로 숨을 때 조직은 근본부터 붕괴하기 시작한다. 위에서 다 결정해놓고 문제가 생기면 화부터 내는 패턴이 반복되면, 구성원들이 느끼는 것은 극심한 무력감과 배신감뿐이다. 결과적으로 조직원들은 어떠한 적극적·창의적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어차피 잘되면 자기 공, 안 되면 내 탓이 될 텐데 굳이 모험할 필요가 없다"며 입을 다물고 영혼 없는 복지부동에 빠지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높은 성과를 내는 조직의 리더십 원칙은 단 하나다.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상사에게(Credit to the team, Blame to the leader)"이다.
상사가 스스로 단단한 방패가 되어 실패의 리스크를 책임져줄 때, 부하 직원은 비로소 두려움을 털어내고 강력한 동기부여와 함께 소신과 창의성을 발휘한다. 성과가 났을 때 부하에게 공을 돌리는 리더 밑에서만 조직원들은 자신의 역량을 100% 쏟아붓는 자발적 몰입을 보여준다.
반대로 "공은 내 몫, 책임은 부하 몫"으로 치부하는 비겁한 유체이탈식 리더십 밑에서는 단 하나의 혁신도, 적극적인 행정도 싹틀 수 없다. 자신은 똑똑하게 지시했는데 아랫사람이 일을 망쳤다며 부하 뒤에 숨어 호통만 치는 리더에게 국민도, 조직원도 더 이상 신뢰와 동력을 보낼 수 없다. 국민과 국정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지금 최고 결정권자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부처를 향한 호통이나 질책이 아니라 "내가 결정한 일의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는 리더로서의 당당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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