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묘소에 고한 글> ― 박남수의 연부사(戀婦詞) ㅡ(247) 2014.2.14.
한때 “마누라가 죽으면 화장실 가서 웃는다.”와 “마누라가 죽으면 병풍 칠 때 웃는다.”라는 우수갯소리가 있었다. 남자들의 속내를 풍자한 것이다. 지금은 화장실 가서나 병풍 칠 때 웃다가는 죽은 마누라가 살아서 벌떡 일어날 것이다. 절대 웃을 일이 아니다.
조선 영조 정조 때 문장가인 성균진사 박남수(朴南壽, 1758∼1787)는 아버지 박상면(朴相冕, 1730∼1757)이 28세로 세상을 떠난 후 7개월만에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는 4세 때(1761년)에 참판(參判) 이해중(李海重)의 5세 된 딸 한산 이씨와 양가의 어른들에 의하여 혼인이 언약되었다. 부인도 태어난 지 돌이 못되어 어머니를 잃었다. 이들은 어른들의 혼약에 따라 10년 후인 1771년 5월에 결혼하니 박남수는 14세였고, 부인은 15세였다. 이 결혼 이야기는 소설과 같다.
부인은 결혼 5년 만인 1775년 8월 2일 한 점의 혈육을 남기지 못한 채 19세로 요절하자 18세의 남편 박남수는 애끓는 정을 한글 제문인 「을미구월졔문」을 지어 영전에 고하였다. 즉, 발인 전날인 9월 초하루 저녁 상식(上食) 때에 고한 애절한 제문이다. 난해한 한문으로 제문을 짓지 않고 쉬운 한글로 제문을 지은 것은 부인의 혼령이 알아듣기 쉽게 배려한 것이다.(한글 제문인 「을미구월졔문」은 장문이므로 다음 기회에 소개한다.)
박남수는 부인이 운명한지 만 8년 후(26세)인 1783년 제사 날(8월 2일)을 맞이하여 이번에는 한문으로 「고망실이씨묘문」(告亡室李氏墓文)을 지어 산소에 가서 읽었다. 전문을 보자.
“그대가 운명한 지 이미 8년이 되었소. 달로 계산하니 88개월이요 날짜로 헤아려보니 2천 5백 84일이 되었으니 그대가 세상을 떠난 지가 또한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소.(子之亡, 已八年于玆矣. 月以計八十八月, 日以計, 二千五百八十四日, 則子之亡, 亦云久矣.)
세월이 오래 되면 잊기 쉽고 자식이 없으면 잊기 쉬우며 다시 새 사람을 얻으면 더욱 잊기 쉽소. 그러나 나는 유독 그렇지 않으니 도리어 쉽게 잊을 일도 쉽게 잊지 못하오. 새 사람이 어질면 그대와 같은 것 같다 말하고 어질지 못하면 그대와 같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오. 어질어도 또한 생각나고 어질지 못해도 또한 생각이 나오.(歲遠則易忘, 無子則易忘, 復娶新人, 則尤易忘. 然余獨不然, 反以易忘, 爲不易忘矣. 新人賢則曰, 與子相似, 不賢則曰, 與子不相似. 賢亦思, 不賢亦思矣.)
아들이 없다고 잊고 세월이 오래 되었다고 잊어버릴 것 같으면 점점 잊게 되어 한 세상을 두루 돌아보아도 그대를 잊지 못하는 자 누가 있겠느뇨? 내 이런 까닭으로 차마 잊을 수가 없소.(其若無子而忘, 歲遠而忘, 浸浸然相忘, 則環顧一世, 不忘子者誰也. 余以是不忍忘也.)”(修隅前集)
이렇게 세상을 떠난 부인을 잊지 못하는 「고망실이씨묘문」의 문학적 우수성은 그의 한글 「을미구월졔문」과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부인을 잃은 비애가 크고 한이 되어 8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였다. 슬픔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으면 세상을 떠난 지가 달수로는 “88개월”이 되었고 날수로는 “2천 5백 84일”이라고 헤아려 보았겠는가?
그것은 한 점의 혈육도 없이 꽃다운 열아홉 살에 이승을 떠난 부인이라서가 아니다. “아들이 없다”고, “세월이 오래 되었다”고 잊어버린다면 이 세상 천지에 “그대를 잊지 못하는 자 누가 있겠으리오? 내 이런 까닭으로 차마 잊을 수가 없소!”라고 통곡하였다. 부인이 운명한 지 8년이 지났지만 부부의 인연을 잊지 못하는 애틋한 정이 가슴을 알리게 한다.
박남수는 이 글에서 지아비의 애틋한 정(夫情)과 부부의 의리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오롯이 제시하였다. 이 글은 부인을 잃은 슬픔을 그린 도망문(悼亡文, 부인의 죽음을 애도한 글)의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부사(戀婦詞)는 부부 인연의 소중함과 남편의 도리를 일깨워주는 명문이다. 만일 마누라가 죽으면 화장실 가서나 웃거나, 병풍 칠 때 웃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글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김상홍 제공
'유익한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親舊)는 나의 스승이다. (0) | 2025.02.19 |
---|---|
우수 (0) | 2025.02.18 |
큰 나무에 붙어있는 작은나무, 그원리는 (0) | 2025.02.12 |
🇰🇷 대한민국을 중공 공산당으로 부터 # 지켜냅시다 !!!! (0) | 2025.02.07 |
특별기고/김학성 명예교수] 비상계엄이 내란이라고요? 내란의 내자도 꺼내지 마라 (0) | 2025.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