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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 연재 26. 20세기의 정치와 종교/PhD Hugo W. Kim

양곡(陽谷) 2023. 9. 17. 07:45

문명사 연재 26. 20세기의 정치와 종교

영국-이란 석유회사가 1908년 페르시아의 풍부한 유전을 발견하여 영국 자본이 페르시아에 유입되자 이에 접근하려던 러시아의 야심을 좌절시켰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도시를 개설하고 프랑스 자본으로 시베리아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였다. 한편 발칸 제국을 수 세기 동안 지배해온 터키에 저항하여 1912-13년 발칸동맹은 터키 세력을 반도에서 축출하였다. 팽창하는 독일의 동맹세력과 영국-프랑스-러시아의 3국 협상이 발칸에서 충돌하여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의 참전으로 협상국이 승리하여 1919년 베르사유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a) 제1차 세계대전 (1914-19)

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 제1차 세계대전은 900만 명의 군인과 700만 명의 민간인이 전장에서 사망한 인류 최초의 대전쟁이다. 이 전쟁은 1914년 6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세르비아 방문 중에 암살당하여, 이해가 얽힌 강대국 간의 충돌이 전쟁으로 발전한 것이다.

***상호 방위동맹: 독일은 1882년 삼국동맹(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을 체결하고, 발칸에서 세력을 유지하려고 러시아와 재보험 조약(1887)을 비밀리에 체결하여, 양국이 제3국과 전쟁을 하면 중립하기로 하였다. 1890년 러시아가 조약 연장을 요구하였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중동맹(1879)을 위해 독일은 이를 거부하여 비스마르크는 발칸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 간에 세력균형을 유지하였다. 프랑스는 러시아와 동맹(1894)을 체결하고, 영국은 보어전쟁의 화려한 고립에서 탈출하여 프랑스(1904), 러시아(1907)와 각각 우호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연장선에서 프랑스-영국-러시아가 삼국협상(1907)에 서명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출발점에서 연합세력(불-영-러-이탈리아-일본-미국)이 중앙세력(독-오스트리아-터키-불가리아)과 대치하였고, 삼국협상국은 세 국가의 합의 없이는 단독으로 평화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제국주의와 경제 경쟁: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제1차 모로코 위기(1905-06)에서 독일은 프랑스 지배권에 도전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발칸에서 터키령의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하였다(1908). 제2차 모로코 위기(1911)에서 영국은 독일해군이 공격하면 프랑스 북방해안을 방어해 준다는 비밀해군조약(1914)에 서명하였다. 이탈리아-터키는 1911-12 기간에 북아프리카에서 싸웠으나 강대국이 개입하지 아니하였다. 발칸전쟁(1912-13)은 러시아의 후원으로 발칸 제국이 동맹을 결성하여 오토만을 발칸에서 축출하였다. 프랑스-러시아 동맹(1894)은 양국이 독일의 공격에 방어를 약속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독일 제조업이 급속히 발전하여 1890년부터 세계 각처에서 영국과 경제적 분쟁을 일으켰다. 프랑스는 1871년 알자스-로렌을 독일에 빼앗기고 석탄을 수입하였으며, 독일은 광물자원이 풍부한 모로코에서 프랑스에 도전하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발칸에서 상업적 특권을 위해 러시아와 경쟁하였으며, 오스트리아는 발칸지역을 투자와 공산품 시장으로 보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서 경제적 이해가 적은 역할을 하였으나, 독일의 급속한 산업화로 투자와 무역에서 강대국 간의 경쟁이 점차 심화 되었다.

***군국주의: 군인이 민간인을 지배하고 정책 결정에서 군사적 배려가 우선하는 이념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에서 장군과 제독이 때로는 장관으로서 정치지도자에게 조언하며 국내정책에 영향을 주고, 국방비의 증액을 요구하며 군비경쟁을 초래하고 새로운 군사기술을 개발하였다. 19세기와 20세기에 군국주의, 민족주의, 제국주의는 동일 선상에서 국력을 신장하는 수단이 되었다. 영국과 독일은 1907년 해군력 경쟁으로 전함과 해군을 증가하였고, 무기와 장비의 질을 크게 개선하였다.

***민족주의: 1871년 독일에 패전한 프랑스를 제외하고 유럽제국은 반세기 동안 평화롭게 살았다. 영국은 자국의 해군력이 어떤 전쟁에서도 제패할 수 있다고 자만하였다. 독일은 급속한 산업화로 무기와 장비를 증강하고 전함과 잠수함을 건설하여 러시아나 프랑스와 전쟁에 대비하였다. 러시아는 거대한 인구로 150만의 상비군이 있었다. 프랑스는 동부전선에 콘크리트 요새를 건설하여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유럽은 많은 지역에서 민족적 종교적 분할이 분명하여, 피지배 민족은 제국주의적 지배로부터 해방을 원하였다. 러시아는 80개 이상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언어와 종교의 통일을 강요하였다. 동부 유럽에서 민족주의 집단들은 오토만제국의 통치를 약화하여 모슬렘의 지배를 벗어나려 하였다.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하자, 발칸지역에서 슬라브 민족이 저항하여 통일된 대세르비아를 건설하려는 판-슬라브주의가 일어났다.

전쟁의 직접적 원인: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드가 1914년 6월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를 방문 중에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테러그룹이 그를 암살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당국은 약 5,500명의 세르비아인을 체포하고 투옥하여 700-2,200명이 옥사하고 460명을 사형하였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 정부가 범행관련자를 조사해 주기를 요청하였으나, 세르비아 관리가 암살에 관련한 것이 아니라고 조사를 거부하였다. 세르비아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점령하여 병합을 원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28일 전쟁을 선포하였다. 세르비아와 동맹관계인 러시아는 병력을 25일부터 부분 동원하고 30일 총동원하였다. 독일의 빌헬름 2세는 러시아에 동원과 개입을 중지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내고, 프랑스에 중립을 요청하였다. 러시아의 거절로 독일은 8월 1일 러시아에 선전포고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는 4일 총동원하였다. 프랑스의 무응답에 독일은 8월 2일 룩셈부르크를 침공하고, 3일 프랑스에 선전포고하였다. 영국은 8월 4일 독일에 선전포고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전쟁과 전선의 진전: 슐리펜계획: 독일은 러불동맹(1894)으로 양면 전쟁의 위협에 직면하여, 알프레드 본 슐리펜 참모총장(1892-1905)이 전쟁계획을 수립하였다. 전략개념은 초기에 프랑스와 전면전쟁으로 북부 벨기에 지역으로 집중 공략하고 남하하여 신속히 전선 후방을 제압하는 동안, 10% 정도의 병력으로 러시아 전선의 공세를 지연시킨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의 전쟁계획에 상응하는 방어계획으로 대응한다. 러시아의 전력이 예상보다 강하면 동프러시아와 괴니스베르크를 내어주고 지연전을 편다.

독일의 전쟁목적: 독일의 9월 계획은 1914년 9월 수립된 영토확장 계획으로 다음을 포함한다. 전쟁에 승리하면 프랑스는 북부 해안지역을 벨기에나 독일에 할양한다. 프랑스는 거액의 전쟁배상금과 군인연금 및 추가비용을 지불하고 독일 국채를 청산한다. 프랑스의 북부 요새를 철거하고 부분적으로 무장 해제한다. 벨기에는 독일에 병합하고 룩셈부르크는 보호국이 된다. 러시아의 서부를 나누어 완충국을 만든다. 중앙유럽에 독일 주도의 경제적 조합을 만든다. 독일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확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야심은 독일의 패전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게 되었다.

전쟁의 진전: (1) 세르비아 전역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독일군이 러시아 전선을 방어한다고 믿었으나 독일은 그들이 전담하게 하여 오스트리아는 병력을 러시아와 세르비아 전선으로 분할 하였다.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공격을 방어하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 (2) 벨기에와 프랑스 전선: 슐리펜계획에 따라 80%의 독일군이 북부 벨기에로 진격하여 프랑스로 남진하였다. 독일은 부상자의 증가와 추가병력 부재로 결정적 전투가 어려웠으나 프랑스군을 우회하여 초기작전에 성공하였다. (3) 아시아 태평양 지역: 뉴질랜드는 독일령 사모아를 점령하고, 오스트레일리아군은 뉴폼멘 섬에 상륙하였다. 일본은 중국의 독일 식민지를, 여타 연합국은 태평양의 독일 식민지를 점령하였다. (4) 아프리카 지역: 영국과 프랑스군은 독일 보호국인 토고와 카메룬을 침략하고, 남서 아프리카의 독일군은 남아프리카를 공격하였다. (5) 독일은 인도 민족주의와 범슬라브주의를 전쟁에 유리하게 이용하려 하였으나, 인도의 지도자들은 영국에 대한 충성심과 우호적 감정으로 영국을 지원하였다. (6) 서부전선은 참호전의 교착과 살육으로 끝없는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해전은 영국이 우위를 확보하여 해상봉쇄를 유지하였으며, 독일 유보트가 미국과 영국 간의 병참선을 위협하였으나, 1917년부터 군함이 상선을 호위하여 위협이 감소하였다. 남부 전선은 삼국협상국이 발칸과 오토만을 제압하였으며, 이탈리아 해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을 제압하였다. 루마니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공격하였다. 동부전선에서 러시아는 갈리시아와 동프러시아를 침공하여 초기에는 성공하였으나 1917년 혁명으로 철수하였다.

정치와 경제전쟁: 인력과 물자를 동원하는 총력전은 경제행위를 중앙통제로 조직화하나 전투원들은 무기와 탄약이 항상 부족하였다. 농부와 노동자들의 징집으로 농업생산이 심각하게 감소하였다. 영국의 해상봉쇄는 중앙세력이 해외식품과 원자재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였다. 독일군은 프랑스의 동북부 산업 지역을 점령하여 자원과 공장을 탈취하였다. 독일해군이 발트해를, 터키가 다다넬스 해협을 봉쇄하여 러시아는 겨울에 전략물자 수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각국 정부는 군수지원의 공급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모든 자원을 전쟁 위주로 편성하여 통제하고, 전투원의 사기를 위하여 전쟁 노력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억제하였다. 독일 일반참모부 정치국은 사실상 군사독재를 하였고, 영국과 독일은 행정부가 비상대권을 가지고 의회의 견제를 제한하였다.

독일의 선전 선동: 독일은 영 불 러의 전선 후방에서, 반란이나 교란작전으로 군대를 무너트리고, 억압받는 대중의 방어자로서 민족자결을 위하여 싸우는 투사로서 평판을 얻기 위하여 선전 선동하였다. 주요 표적은 북아프리카, 이집트, 인도, 남부 러시아의 모슬렘으로, 독일과 오토만제국의 군사동맹은 유럽의 기독교 지배에 대한 반항으로 일어서는 무하마드 추종자들이 수행하는 성전을 선언하는 것이라 선동하였다. 독일은 연합국 주요 도시에서 통치에 저항하는 이슬람 민족주의자들에게 보조금을 주었고, 반러시아 혁명 세력에게 자금을 대었다. 반 독일 경제연합: 독일의 적대적 경제정책에 대항하여 연합국은 1916년 파리경제회의를 개최하여 항구적 경제협력의 수단--특혜관세, 원자재 공급 및 선적, 금융 및 화폐 관리 등—을 논의하였다. 아랍제국의 반란: 터키의 해협봉쇄로 유럽동맹으로부터 러시아로 수송되는 군수물자가 차단되었다. 터키는 성전을 위해 이슬람 국가에 압력을 가하였으나, 터키의 지배에 대한 증오가 기독교 서방국가에 대한 반감보다 강하여 실패하였다. 영국은 아랍제국의 독립을 약속하였다. 민족자결과 해방: 연합세력의 국가들이 공감해 온 가운데 1918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14개 항의 민족자결의 원칙을 발표하였다. 독일과 오토만의 군사지배에 있는 지역에서 민족주의자들은 독립을 위하여 중앙세력에 저항하고 연합세력의 군사작전에 협력하였다.

러시아 철수와 미국 참전: 러시아 철수: 볼셰비키가 1917년 10월 혁명으로 집권하여 제1차 세계대전 연합세력으로부터 탈퇴하고 철수하였다. 독일 정부는 스위스에 망명 중인 러시아 혁명그룹에 자금을 지원하고, 혁명이 성공하여 러시아군이 철수하자 동부전선에서 융통성을 확보하였다.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외채상환을 거부하여 프랑스 해외 투자의 1/4이 사라졌으며, 중앙세력과 독자적 평화협상으로 브레스트-리토브스크 조약(1918)을 체결하고 러시아 참전을 종식하면서, 러시아가 전쟁에 개입한 동유럽과 서부 아시아 11개국의 독립을 허용하였다. 러시아의 철수로 국경 지역에서 독일은 전략적 주도권이 확장하여 경제적 이득을 가져왔다.

독일의 패전: 독일은 1918년 3월 62개 사단 병력으로 서부전선에 총공세를 취하여 파리 근교 120Km 지점까지 진격하였으나, 27만 명의 부상자를 내고 7월에 출발점으로 퇴각하였다. 8월부터 연합군이 대공세로 반격을 개시하여 독일군은 전선을 지탱할 수가 없게 되고, 9월에 불가리아, 10월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터키가 각각 독자적으로 휴전하였다. 독일은 내부 혁명으로 11월 빌헬름 2세가 사임하고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연합국은 거대한 병력과 물자로 독일을 침공할 준비가 되어있었으나, 독일은 전쟁 능력을 상실하였고 전쟁 노력에 대한 태업으로 전쟁을 더 지속할 수 없어 휴전협상에 들어가 1919년 6월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하였다.

미국의 참전: 1917년 2월1일부터 독일 잠수함이 미국 상선에 대해 무차별 공격하고, 일본과 멕시코를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고 미국의 참전을 막으려는 독일의 전문을 영국이 해독하여 미국에 전달하니, 머뭇거리던 윌슨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결심하였다. 미국은 1917년 4월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물자와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존 퍼싱 장군의 지휘하에 1918년 여름부터 서부전선에 매일 1만 명의 병력이 도착하여, 11월 총 200만 명의 미군이 프랑스에 주둔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총 4백만의 병력을 동원하였고, 전사자는 (1918년 12월 31일 기준) 116,500명(전투원 53,402명, 비전투원 63,114명)이 되었다. 전쟁 동원으로 인해 미국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여 세계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베르사유 조약: 평화협정은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서명하고 1920년 1월 20일 공포하였다. 평화회의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이 주도하였고 일본은 작은 역할을 하였다. 평화회의는 독일의 군사력을 약화하고, 재기불능의 전쟁배상을 부과하며, 국제연맹을 창설하였다. 영토와 관련하여,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의 독립을 승인하고, 독일은 알자스 로렌을 프랑스에 반환하며, 벨기에와 덴마크 영토가 확장 조정되고, 자를란트주는 15년간 국제사회가 감독 후 국민투표로 결정하며, 단치히는 자유도시가 되었다. 군대와 관련하여, 독일은 특정 수의 야포, 장갑차, 항공기, 전함을 양도하고, 육 해군 병력을 10만 이하로 제한하며, 항공전력을 금지하고, 전차의 개발 및 배치를 금지하였다. 라인강 서쪽 지역과 몇 개의 특정 지역을 비무장하였다.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지역의 피해에 거액의 보상금을 부과하였다. 독일제국의 식민지는 강대국이 나누어 위임통치하였다. 첫째 터키의 식민지는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 통치한다. 둘째 뉴기니, 사모아, 남서 아프리카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가 분할 통치한다. 셋째 아프리카 식민지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가 분할 통치하고,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은 작은 부분의 영토를 받는다. 일본은 적도 북부의 독일 식민지를 인수한다.

평화조약의 실패: (1) 영국과 프랑스의 대조적 견해: 영국은 독일을 러시아에 대한 방어장벽이며 경제력이 강한 무역 상대국이라 보았고, 프랑스는 독일이 안보에 위협이라고 보기 때문에 조약의 제재가 너무 미흡하였다. (2) 독일 무장해제: 연합국은 독일의 무장해제와 군사력을 제한하였으나 조약의 시행에 시간제한이 없었다. (3) 영토의 요구: 프랑스는 라인란트와 자를란트를 지배하기를 원했으나 연합군이 15년간 신탁 통치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프랑스는 독일 군인을 보았고 영국은 잠재적 고객을 보았다. (4) 전쟁배상금: 프랑스는 독일이 침략한 지역의 복구비용과 자국 전쟁부채 지불을 요구하여 독일의 경제력 약화를 기대하였다. 반면 영국은 국제무역의 회생을 원하여, 과도한 부채는 독일에서 영국 상품의 구매를 어렵게 하므로 비교적 관대하였다. (5) 미국 상원은 평화조약 비준을 거부하여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이 불가능하였다.

러시아 내전과 연합국 개입: 러시아 볼셰비키 적군은 느슨한 연합의 백군과 싸웠다. 적대적이며 호전적 사회주의와 비 이념적인 청군도 양 진영과 싸웠다. 적군은 1919년 러시아 전 지역에서 이들을 대부분 제압하고 1923년 극동 잔여 백군을 제압하여 내전을 종식하였다. 핀랜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는 독립하고, 나머지 러시아제국 영토는 소비에트 연방으로 합병되었다. 적군의 편성: 러시아제국은 군대를 해체하고 볼셰비키는 자원에 의해 붉은 가드를 편성하여 적군의 모체로 하고, 각 부대에 정치위원을 임명하여 사기를 유지하고 충성심을 독려하였다. 트로츠키는 징집으로 적군을 모집하고 반대자를 인질이나 총살로 처형하였다. 약 3/4의 차르 장교들이 소비에트 적군에 편성되었다. 반 볼셰비키 운동: 10월 혁명에 저항하여 러시아 전역에서 반 볼셰비키 운동이 전개되었다. 연합국 개입: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에 보낸 군수물자가 독일에 넘어갈 가 우려하여, 영국은 물만스크에 파견대를 상륙시키고, 영국 미국 프랑스의 부대는 아크엔젤을 점령하며, 일본군은 1918년 4월 울라지보스토크를 점령하여 중국과 러시아국경에 7만 병력을 전개하고 1922년까지 주둔하였다. 미국은 시베리아 원정군 약 8천을 파견하여 체코슬로바키아 병력 4만을 구조하고, 미국이 러시아에 보낸 군수물자를 보호하였다.

현대 중동지역 편성: 영국과 프랑스는 터키 이외의 중동을 5개 지역으로 분할하여 영국은 이라크, 팔레스타인, 요르단을,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신탁 통치하였다. (1) 영국은 이라크 저항세력을 제압하고, 외교 국방 금융기관을 장악하여 1921년 하세마이트 왕국을 세우고 1930년 조약으로 독립하였다. (2) 영국은 유대인의 자유로운 이전을 허용하여 아랍인들에게 강력한 분노를 유발하였고, 광범위한 분쟁으로 1936-39년 아랍 폭동이 일어났다. (3) 영국의 지원으로 이빈 사우드가 1924-25년 하제즈 왕국을 정복하고 반대파를 억누르고 세력을 확장하여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수립하였다. (4) 오토만제국은 분해되어 오토만 장교였던 케말 아타튀르크는 1923년 터키 공화국을 수립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5) 페르시아는 리자 샤 팔레비가 1921년 권력을 장악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워 1935년부터 이란이라 명명하였고, 영국-이란 석유회사는 큰 이윤을 만들었다.

TO BE CONTINUED

(b) 세계대전 사이의 세계 (1919-39)
(c) 제2차 세계대전 (1939-45)
(d) 냉전과 국지전 (1945-85)
     트루먼-스탈린 시대의 양극 세계 (1945-53)
     평화공존과 대결 (1953-62)
     화해와 다극화 (1962-75)
     아시아의 냉전과 중국의 부상
     중동,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극동의 분쟁 (1875-85)
(e) 세계화와 새로운 도전 (1985-2015)

REFERENCES

Hugo W. Kim. The World Wars, The Cold War, and Terrorism From 1914 To 2015: Globalization and Interdependence (Part I). North Charleston, SC: CreateSpace, 2020, 1-518.

김휘국. 정치철학*경제사상과 함께 읽는 세계문명사. 서울: 한국전자도서출판, 2022, 645-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