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사 연재 23. 19세기 유럽의 정치철학 (Continued 3)/ PhD. Hugo W. Kim
문명사 연재 23. 19세기 유럽의 정치철학 (Continued 3)
(c) 사회주의(Socialism)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노동자들의 자기경영, 그들과 관련된 정치적 이론과 운동의 특성을 가진 경제 사회 체제의 이념이다. 사회적 소유권은 공공의, 집단적-협동적, 시민의 동등한 소유권에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는 시장경제나 계획경제의 사회주의로 구분한다. 사회주의의 정치적 운동은 자본주의와 관련되어 “개혁 대 혁명” 또는“국가 사회주의 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가 주요 관심 사항이었다. 19세기 후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하여 사회주의가 이론적으로 발전하였고, 1920년대에 국제 사회주의 운동은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지배하였다.
[사회주의의 의미] 사회주의 기본적 특색으로 생산 소유권: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은 생산, 교환, 분배, 재정의 주요 경제적 수단을 정부가 소유하고 통제한다는 개념이다. 복지국가: 정부가 사회복지를 위하여 기회의 균등, 부의 평등한 분배, 기본 생활 불가자 대한 정부 보조 등의 주도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구소련은 완전한 사회주의를 추구하였지만 실패하였고, 서방 유럽은 성공적으로 가난을 극복하였다. 1930년대 공황으로 시장기능이 약화하여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로서 뉴딜정책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보장, 농산물 가격지원, 실업수당 지급, 복지 프로그램, 주택융자 보증에 정부가 보증하였으며, 은퇴자의 건강보험, 직업훈련, 공공교육 지원, 중소기업 재정지원 등을 점차 확대하였다. 사회주의는 경제적 평등을 추구한다. 사회의 물질적 여건이 개선되면 사회관계가 경쟁에서 협력으로 바뀌고, 생산성 향상으로 개인 생활 양태가 개선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주의의 문제점: (1)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의 불평등이 태생적 능력의 불평등 보다 사회의 불평등한 대우의 결과라고 믿는다. 사회주의자의 관점에서, 보상이나 물질에서 현재보다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치제도가 인간의 시작조건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2) 사회적 평등은 공동체의 협력을 강화한다. 사람들이 평등한 환경에서 살면 사회의 단합이 강화되고, 반대로 사회적 불평등은 대립과 불안정을 유도한다고 믿는다. 사회주의자들은 적자생존을 가져오는 기회의 균등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경쟁이 없는 획일화된 사회는 쇠퇴할 뿐이다. (3) 사회주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 충족에 중점을 두지만, 개인 최상의 요구는 성취나 자기실현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은 사유재산의 철폐와 생산한 부의 집산화가 절대적인 사회의 평등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복지정책과 누진 세제를 통하여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였으며, 그들은 자본주의를 철폐하기보다 길들이기를 원하였다.
사회주의의 실패 요인: (1) 사회주의는 개인의 이윤추구 동기를 말살하여 생산성 저하로 국민총생산이 축소되어, 정치 군사제도를 유지하는 기본 비용을 충당하지 못한다. 경쟁이 없는 전체주의는 개인이 자기 일처럼 국가를 돌보지 않아 국가는 정체되고 경제는 후진할 뿐이다. (2) 전체주의는 정치적 목적으로 자원을 배분하여 경제의 전 분야에 잉여와 병목이 생겨 제한된 국가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3) 국가가 소유하는 기업은 국가의 이름으로 특정 개인이 경영한다. 그는 정치적 목적으로 기업을 경영하며, 적자는 중앙정부가 세금으로 해결해준다. 결론적으로, 선천 후천적으로 인간의 시작조건이 상이하여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은 불가피하며,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사회주의의 평등성을 통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유토피아 사회주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는 절대 왕정을 비판하고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모두의 공동체로 유토피아를 기술하고 있다. 공상적 사회주의는 19세기 초 미래지향적 이상사회의 전망과 윤곽을 나타내는 사상으로, 당시 사회의 물질적 여건에 기초하지 못하였다. 공상적 사회주의는 여타 사회주의(무정부주의)와 달리 사회주의를 구현하는 데 계급투쟁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기존 사회에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협조적 사회주의 형태로 작은 공동체를 구성하여 사회를 위한 그들의 계획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곧 마르크스주의가 유럽 사회주의의 대세를 이루었다.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1760-97)는 프랑스혁명 시대에 정치 선동가로서 프랑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분야에서 대변혁의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그의 토지개혁 이론은 공산주의적 사상의 바탕 위에 있었다. 바뵈프는 1796년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체포되어 바로 처형되었다. 헨리 생시몽(1760-1825)은 프랑스의 정치 경제 사회 이론가이며 기업가로 생시몽주의 이념을 정립하였다. 그는 효과적인 사회와 효율적인 경제를 조직하고 성취하기 위하여 산업화 계급이 필요하고, 봉건주의와 군사주의에 대치하여 기술 관료적 사회주의를 지향하여 과학자와 기술자가 사회를 결속시키고 안정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로버트 오언(1771-1858)은 맨체스터의 큰 섬유공장의 감독관으로 시작하여 뉴라나크 공장을 매입하고 사회주의 공동체를 구성하였다. 그는 인간의 성격이 유년 시절부터 형성되므로 조기교육의 효과가 중요하다고 믿고 교육과 개혁에 적용하였다. 오언은 1825년 미국 인디애나주에 대지를 매입하여 새로운 화합의 공동체를 설립하였으나 구성원의 견해차가 생겨 1828년 철수하고, 영국에 돌아와 세 지역에서 오엔 공동체를 시험하였으며, 노동조합이 자치적 연구회를 구성하도록 격려하였다. 샤를 푸리에(1772- 1837)는 프랑스 사회주의 사상가로, 관심과 협력은 생산성을 크게 향상하여 사회적 성공을 가져오는 비결이라고 하였다. 그는 공동조합제도를 구상하여, 공동체가 네 개 층의 아파트 건물을 매입하여, 최상층에 최고 수입자, 최하층에 최저 수입자를 입주시켜, 생산성을 향상하는 동기를 촉진하려고 하였다.
[혁명적 vs. 진화적 사회주의] 혁명적 사회주의(Revolutionary Socialism):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변화하는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사회주의자들은 믿는다. 혁명은 폭력적 반란일 필요는 없으며, 노동자들이 대중운동으로 권력을 쟁취하여, (자본가 계급과 그들의 이익에 반대하는) 노동자 계급이 국가를 직접 통제한다. 혁명적 사회주의는 정치적 개혁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경제 사회적 문제를 점진적으로 개선하려는 사회적 운동에 반대한다. 19세기에 혁명적 전술이 사회주의자들을 매혹한 이유는 첫째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노동자 대중이 극심한 빈곤과 광범한 실업으로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불의가 만연하였다. 자본주의는 억압과 착취의 제도로 보였고, 노동자 계급은 혁명의 벼랑 끝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둘째 노동자 계급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이 거의 없었고, 정치적 활동으로부터 제외되었다. 남성 보통선거가 1848년 프랑스에 도입되었고, 지배적인 농업사회는 종교적이며 보수적으로, 정치적 혁명이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혁명 직후에 부르주아 반혁명의 위험에 대비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일시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1949년 모택동이 혁명에 성공하여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옮겨갔다. 베트남은 처음에 프랑스와 다음에 미국과 싸워 1975년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였다. 아르헨티나 혁명가인 체 게바라는 남미 여러 지역에서 게릴라군을 이끌었고, 1959년 쿠바 혁명에서 군대를 지휘하였다. 아프리카에서도 유사한 혁명투쟁이 전개되었다. 혁명으로 수립된 사회주의 국가는 통상 구소련과 같이 국가 집단화의 형태를 취하여, 독재자로 국민을 탄압하였다. 그 이유는 (1) 새로운 통치자가 폭동을 다스리는 데 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합법이다.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 (2) 혁명당은 통상 강력한 지도력과 엄격한 규율로 군사체제를 적용하여 권력을 강화한다. (3) 구질서의 흔적을 근절하면서 모든 반대세력을 제거하여, 전체주의 독재를 건설하는 길을 효과적으로 준비한다. 그러나 러시아혁명으로 건설한 USSR이 1991년 붕괴하여, (생산성 저하로) 국가의 경제적 역량이 정치 군사체제를 지원하지 못하면 정치체제가 붕괴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
진화적 사회주의(Evolutionary Socialism): 19세기 유럽 선진국들은 자본주의가 성숙하여, 도시 노동자들은 혁명적 투지를 상실하고 사회에 통합되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를 확장으로 특히 1875년 이후에 임금과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다.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의 클럽, 무역조합, 정당 등의 조직을 개발하여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안전과 산업사회에 소속하는 감각을 키웠다. 더욱이 정치적으로 민주화의 점진적 발전은 노동자 계급에 선거권을 부여하여 정치참여를 확대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국가들은 남성 보통선거 제도를 도입하고 여성에까지 선거권을 확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주의자들의 관심을 폭력적 반란으로부터 멀리하였고, 사회주의 혁명의 대안으로 진화적, 민주적 혹은 의회주의적 길이 있음을 그들에게 설득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와 같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후진한 국가에서는 혁명적 교리가 지배하였다.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와 사회적 민주주의(Social Democracy)는 유사하나, 전자는 정치체제가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 1884년 영국의 부자 지식인들 시드니 웹, 비어트리스 웹, 죠지 버너드 쇼 등이 점진적으로 사회개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 협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혁명을 두려워하고 계급투쟁에 의한 무산계급의 독재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로마제국 파비우스 맥시머스가 한니발을 패퇴시킬 때 사용한 인내와 방어 전술에 착안하였다. 사회주의는 자유 자본주의로부터 정치적 행동과 교육을 통하여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발전할 것이다. 정치적 행동은 사회당의 창당을 요구하고, 폭력적 혁명보다 확립된 의회 정당들과 경쟁으로 세력을 얻는다. 따라서 그들은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보다 중립적 중재자로 자유주의 이론을 받아들였으며, 위의 웹은 영국 노동당 창당에 활발히 간여하였다. 페이비언은 모든 정당의 정치인, 공무원, 과학자와 학자와 같은 정예그룹이 교육을 통해 사회주의로 개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 엘리트 그룹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도덕적으로 우수하다고 인정하면, 사회주의 이념이 이들에게 침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사회주의 경제는 계급투쟁에서 오는 낭비와 허약해진 빈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였다.
페르디난트 라살(1825-64)은 독일의 노동조합 지도자로, 1875년 사회민주노동당과 통합하고, 1890년 독일 사회민주당으로 개명하였다. 사민당은 수정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에 집중적 내부 대립이 자주 있었다. 수정주의자인 라살과 에드워드 번스타인(1850-1932)은 [후자는 진화적 사회주의(1898) 저자] 사회 경제적 정의가 민주적 선거와 제도를 통하여, 폭력적 계급투쟁이나 혁명이 없이, 노동자 계급을 위해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유 선거나 시민권이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를 창출하지 못하고, 투쟁 없이 지배계급이 권력을 이양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19세기 독일 엘리트들은 사회주의 정당의 존재가 새로 수립된 독일제국의 안보와 안정에 위협으로 보고 1878-90 기간 사회민주당을 불법화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은 1891년, 영국은 1900년, 이탈리아의 사회당은 1892년, 프랑스는 1905년 창당되었다.
점진주의의 불가피성: 1900년 전후에 정치적 민주주의의 출현은, 점진주의의 불가피성을 말하는 페이비언의 예언을 반영하듯이, 낙관주의 물결이 사회주의 운동을 통하여 퍼지게 하였다. 낙관주의 근저에는 다음과 같은 가정이 있었다. (1) 진취적인 선거제도의 개선은 성인 보통선거제도를 확립하여 정치적 평등을 달성한다. (2) 정치적 평등은 실제에서 선거의 결과가 가져오는 다수의 이익으로 작용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산업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이 최다수로 선거에서 지배적 힘을 가졌다. (3)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자연적 집으로 생각된다. 자본주의가 착취계급의 제도로 보일 때에, 억압받은 노동자들은 자연히 사회주의 정당으로 유입되어 사회주의 정당이 선거에 승리하고, 사회 정의의 실현으로 노동계급의 해방을 가져온다. (4) 사회당이 권력을 가지면, 사회 개혁의 과정을 통하여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정치적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평화롭게 달성하는 가능성을 가져온다. 정치적 평등이 성취되면 빠른 속도로 사회적 평등이 후속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낙관적 기대는 실제에서 잘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스웨덴의 사회민주노동당은 1951년 이후 집권에 성공하였고, 영국의 노동당과 스페인의 사회노동당은 선거에서 과반에 접근하는 지지를 받았다.
민주적 사회주의 문제점: 진화적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통하여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이나, 실제에서 예상하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 왔다. 첫째, 노동자 계급이 선진 산업사회에서 유권자의 다수를 계속하여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주의 정당들은 자본주의 사회 (도시의 공장 수공업) 노동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선거에서 득표를 호소하였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는 특정 기술을 가진 숙련노동자를 증가하는 추세로 요구하여, 전통적 노동자 계급(공장의 수공 노동자로 빈곤과 불이익을 받는 하층계급)의 규모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현대사회에서 이들은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안정으로 인해 보수적으로 변화하여 중산층 정당과 동반자로서 권력을 공유하게 되어, 사회주의에 흥미를 잃거나 자본주의를 지지하게 되었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간 경기상승으로, 사회주의 정당들은 물자를 조달하는 자본주의 능력이 서구사회에서 모든 계층에게 풍요를 가져왔다고 인정하였다. 1950년대 사회주의 정당들은 증가추세의 풍요한 노동자 계급에 호소하는 그들의 정책을 수정하는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사회주의 정당들은 자본주의의 계급구조 변화와 경제적 세계화의 압력과 싸웠다. 실제로 사회주의는 시장경제가 작동하도록 시도하는 노력을 함께하였다. 좌익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 계급이 근본적 사회주의를 포기하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부르주아 이념이 사회에 퍼져 노동자 계급이 착취당하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셋째, 사회주의 정당이 선거로 권력을 잡으면, 사회개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은 부정적이다. 서구 제국의 사회주의 정당은 단일 정당의 정부를 구성한다. 선거로 집권하면 그들은 국가와 사회에서 확립된 이익에 당면해 왔다. 선출된 정부는 입법 사법 행정의 국가체제 내에서 운영하며, 이들은 선출된 사람이 아니며 기업에 유사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 집단은 계급적 편견을 가지고, 급진적 사회주의 정책을 봉쇄하거나 최소한 약하게 한다. 선출된 정부는 경제의 고용주이며 투자자이고 정치자금의 최대 기부자인 대기업의 위력을 존중한다.
[마르크스주의] 인류 역사상 공산주의의 최초 개념은, 국가 경제체제가 아닌, 소수집단들 속에서 국지적 공동체 관계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집단적 생산과 소비가 국가적 규모로 확대되고 생산과정의 기계화로 산출이 증가하면서, 처음으로 인류가 기아와 빈곤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하였다. 기술과 통신의 발전은 국가가 경제체제를 조직, 관리, 통제할 수 있게 되어 경제적 집단주의가 국가 차원에서 가능하게 되었고, 점진적 현실화로 공상적 사회주의를 출현시켰다. 로버트 오언은 인도주의적 가치를 추구하여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협조적 사회주의 형태로 작은 공동체를 구성하고 (풍요로움 속에 아사하는 사람이 없는) 이상사회를 건설하려 하였다. 마르크스는 공상적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며, 그는 계급투쟁으로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는 혁명을 통하여 자본가 계급을 무자비하게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카를 마르크스(1818-83)는 프러시아 유대인으로 베를린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841년 예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결혼 후 1843년 파리로 이주하여 프레데릭 엥겔스(1820-95)를 만나 두 사람은 일생의 동반자로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1845년 프랑스에서 급진 좌경으로 축출되어 브뤼셀로 이주하였고, 런던에 공산주의자 동맹(1847)을 창립하였으며, 공산주의 선언(1848)을 발간하였다. 같은 해 유럽에 혁명이 일어나 그는 파리와 독일에 잠시 체재하였고, 파리에서 다시 축출되어 1849년 런던으로 가서 영주하였다. 그는 1850-64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였고, 엥겔스가 주는 보조금 외에 뉴욕 트리뷴 유럽 통신원으로 기고한 수입으로 연명하였다. 마르크스는 국제노동자협회의 창립(1864)에 독일 노동자 대표로 초대되었고, 파리 코뮌 (1871)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여 자신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1872년 헤이그의 국제노동자 회의에서 마르크스는 바쿠닌의 무정부주의와 견해차로 대립하였다. 그의 대표적 저술 자본론은 3권으로 1867, 1885, 1894년에 출간되어,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을 널리 전파하였다.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의 빈곤이 자본가의 착취 때문이라고 비난하였으나, 사회주의 정치 경제적 체제는 그들의 빈곤한 생활여건을 해결하지 못하여 역사적 시행착오를 하게 되었다.
마르크스 철학: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왜 자본주의가 멸망하고 사회주의가 이를 대치하는 운명인가 그 윤곽을 그리는 철학 이론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물질적 상황이 사회와 역사발전의 모든 형태에 기본적이며, 생계의 수단인 생산은 모든 인간의 활동에서 가장 결정적이며, 사회의식과 법적 정치적 상층구조는 실제 사회의 기초인 경제적 토대로부터 온다고 하여, 마르크스는 생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국면을 경제적 요소로 언급하였다. 그는 역사변화의 동력은, 경쟁하는 세력 간 상호작용 과정인 변증법으로 역사발전은 내부충돌의 결과라 하였다.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물질주의에 기초하여, 사유재산의 존재로 생기는 생산방식에서 내부적 모순에 관련하여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고, 자본주의는 자신의 반대세력인 노동계급에 통합되어 멸망한다고 하였다. 자본주의와 노동계급의 충돌은 사회주의를 수립하여 높은 단계의 발전을 유도하고, 결국에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게 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마르크스 경제학: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몰락은 불가피하여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다고 믿었다. (1) 노동 이론: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자신을 개발하고 변화시키며 자신의 본성을 창조한다. (2) 자기소외 이론: 자본주의는 교환(이윤)을 위한 생산제도로 (자신이 필요하며 유용한) 노동의 생산품으로부터 인간을 소외한다. 자본주의는 또한 생산과정에서 모든 방법으로 노동의 생산성을 증대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인간은 생산의 도구가 되어 개성을 상실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 (3) 잉여가치 이론: 자본가들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일을 하여,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을 노예로 만든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임금을 초과하는 잉여가치를 생산하게 하여 이윤을 만들며, 이는 노동자에게 돌아갈 임금을 착취한 것이다. (4) 자본주의의 불안정: 자본주의는 노동자와의 갈등뿐만이 아니라 초과생산의 순환적 위기로 그 이윤이 장기적으로 추락하여, 독점과 자본집중으로 착취당한 대중이 공동이익으로 단결하여 압도적 다수가 된다. (5) [비판] 잉여가치 이론은 상품 가치를 생산비로 계산하였으나, 물건 가치는 소비자의 주관적 만족에 의한다는 새로운 한계효용 가치이론으로 마르크스 자본론의 오류가 증명되었다.
마르크스 정치학: 경제적 변화는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변화를 가져온다. 경쟁이 증가하면 자본가들은 많은 기계를 매입하여 노동력이 감소하고, 노동력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므로 자본가의 이윤도 감소한다. 실업이 증가하면 노동자계층의 규모가 커지며, 그들의 비참한 정도가 깊어 지고, 소수가 사회의 부를 독점한다. 노동자들의 비극이 증가하여 참을 수 없게 되면 자발적 폭동이 발생하여, 자본주의는 프랑스혁명에서처럼 노동자 혁명으로 타도된다. 이는 통치 엘리트를 제거하고 국가조직을 뒤엎는 정치적 혁명만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방식을 수립하고 완전한 공산주의를 성취하는 사회적 혁명이다. 혁명은 객관적 여건의 발전으로 결정될 뿐만 아니라, 계급의식을 가진 프롤레타리아의 주관적 요소가 지배한다. 마르크스는 (1) 국가는 사회에 의존하고 경제적 지배계급에 의해 통치되는 억압의 도구로 행동하며, (2) 국가의 중요한 역할은 충돌하는 계급 사이를 중재하는 것으로 이는 계급체제를 영구화한다. 따라서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국가를 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사회주의 이상을 향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성공하여 생산이 평등하게 배분되면, 사회적 분노와 좌절이 감소하여 모두가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된다. 그러면 독재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사회의 모든 개인은 자유롭고, 그들의 체제는 무정부주의자들이 갈망하는 민주적 이상사회로 발전한다. 공산주의 최종단계에서 정부 역할은 행정업무로 변화한다. 사회주의는 모든 나라에서 적용되고, 세계는 국제주의가 지배하여 국경은 가상적 분할에 불과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저술: 공산당 선언(1848)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저로서,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며, 자본주의는 자기모순으로 멸망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승리는 필연이라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선동하였다. 그의 자본론은 3권으로 제1권은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비평(1867), 제2권은 자본 순환의 과정(1885), 제3권은 자본주의 총생산의 과정(1894)을 포함한다.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가 남긴 노트 기록을 보고 그의 사후에 엥겔스가 정리하여 발간한 역작이다. 제3권의 부록은 엥겔스가 사망하기 2개월 전에 유고를 정리하여 추가하였다. 자본론 내용에 관하여는 연재 24 경제사상에서 별도로 논의한다.
TO BE CONTINUED
(c) 사회주의
마르크스 이후의 사회주의 이론
(d) 국민주의(Nationalism)
(e) 무정부주의(Anarchism)
(f) 파시즘(Fascism)
(g) 형이상학적 관념주의에 대한 반동
(h) 공리주의와 영국의 관념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