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꾼 지의 순간 ㅡ 김영모 교수
문화] 나를 바꾼 知의 순간.....김영모
조선일보
입력 2001.07.17. 19:45
개인 연구실의 김영모 교수. <br><a href=mailto:leedh@chosun.com>/이덕훈기자 <
개인 연구실의 김영모 교수. <br><a href=mailto:leedh@chosun.com>/이덕훈기자 <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때는 해방 후 사회가 극도로 불안한
때였다. 그 때는 계속된 가뭄과 흉년, 그리고 탐관오리들로 농민들은
살기가 매우 어려웠고 좌우 대립이 대단히 심하였다. 이러한 참상을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전해 듣고 그 현장을 보면서,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이런 생각들이 내가 커서 신분·계층·계급 문제, 특히
지배층을 연구하게 된 동기였다. 나는 해방 이후 한국 지배층을 연구했고
그 결과 그들의 세습성이 강력히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조선시대
지배층 즉 양반 관료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는 서울대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였던 고 상백 이상백 선생의
영향이 매우 컸다. 박사 과정에 있던 1963년, 선생님은 연구실에서
젊은 제자들과 환담을 나누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어느날 그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시대의 과거 합격자 명단인
방목을 가리키면서 이것을 분석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하셨고
하버드 옌칭 연구소의 연구비까지 주선해 주셨다.
그 날, 상백 선생님의 서가 위에서 먼지가 부옇게 앉은 수십 권의 방목을
펼쳐 보니 거기에는 대과 합격자와 소과 합격자의 사회적
배경들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귀중한 자료를 보고 매우 흥분했다.
그런데 상백 선생님이 소장한 방목은 주로 조선 전기의 것이 많았다.
상백 선생님은 조선 후기 방목은 김두종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사)가
많이 소장하고 있을 거라며 소개하여 주었다. 즉시 김두종 교수님 댁을
방문하여 말씀을 드렸더니 기꺼이 그 많은 방목을 빌려주셨다.
두 분 선생님이 갖고 계신 방목과 서울대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는 국조방목·족보 등을 자료로 이용하여 나는 1964년~67년 일련의
논문을 통해 조선시대 대과(문과·무과)와 소과(생원·진사시), 그리고
잡과 합격자의 형성 요인과 신분 배경, 사회 이동을 처음으로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는 조선시대의 삼정승, 이조판서, 당상관
등 주요 관직자들의 사회적 배경을 탐구하는 데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 정치 지배층의 충원요인, 기회구조, 친족구조,
사회이동의 특성을 규명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한말 관료, 기업인,
유학생 등의 사회적 배경을 밝히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연구 결과를 담은 '조선지배층연구'(일조각·1977)는 내게
월봉저작상과 한국일보 문화상을 안겨주었다.
내가 사용한 이러한 방법은 서지학적·보학적 접근이고 사회학적으로는
기능론적, 경험적 방법이다. 그 후, 미국 하버드대 와그너 교수를
비롯해서 여러 국내외 학자들이 방목을 분석하여 많은 논문을 발표하게
된 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 보람의 씨앗을 제공해 주신 분들이
이상백, 김두종 두선생님이 셨다.https://www.google.com/imgres?imgurl=https%3A%2F%2Fimages.chosun.com%2Fresizer%2FJyvB9oeTE_0jVZimZdnn9WWWXcg%3D%2F216x0%2Fsmart%2Fcloudfront-ap-northeast-1.images.arcpublishing.com%2Fchosun%2FJX7K6QCCTVGNSOZ223OV3CLMQI.jpg&tbnid=HNR8fKeICajPiM&vet=1&imgrefurl=https%3A%2F%2Fwww.chosun.com%2Fsite%2Fdata%2Fhtml_dir%2F2001%2F07%2F17%2F2001071770352.html&docid=xGdk8QtV1759fM&w=216&h=288&hl=ko-KR&source=sh%2Fx%2Fim%2F4
( 중앙대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