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의 죄파의 문화전쟁을 우파가 대응할 수있다
《문화 전쟁》우리도 못할 리가 없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전쟁에서 적이 드론으로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다고 하자. 이때 해야 할 말은 “드론은 비열하다”가 아니라, “왜 우리는 드론에게 맞았는가, 어떻게 드론을 막을 것인가”다. 드론 자체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쓰이고 있고, 효과가 있었다면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그게 전쟁이다.
이 이야기를 문화와 정치의 싸움으로 옮겨보자.
좌파가 오랫동안 써 온 무기 중 하나가 그람시의 문화진지전인데, 이를 두고 우파 일각에서는 아예 혐오부터 한다. “공산주의자의 이론이다”, “불순하다”, “손대면 안 된다”는 게 우파의 반응이다. 이 태도는 솔직히 말해 정말 미련하다. 상대가 이미 써서 효과를 보고 있는데, 이름 때문에 도구 자체를 버리는 건 스스로 전장에서 물러나는 바보들의 행동이다.
문화진지전은 폭탄이 아니다. 책과 수업, 기사와 방송, 영화와 드라마, 시민단체와 연구 보고서 같은 일상적인 경로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방식이다. 법을 고치기 전에 생각을 바꾸고, 정권을 잡기 전에 상식을 바꾸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이미 결과가 말해준다. 많은 사회적 쟁점에서 좌파적 관점이 “주장”이 아니라 “당연한 생각”처럼 자리 잡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그람시의 문화진지전은 좌파 전용 장비가 아니다. 특정 이념에만 작동하는 전략이 아니다. 사회에서 생각이 어떻게 퍼지고, 무엇이 상식으로 굳어지는지를 설명하는 분석 도구다. 분석 도구를 연구한다고 해서 그 이념을 믿게 되는 것은 아니다. 총의 구조를 안다고 해서 반드시 총을 쏘는 것도 아니다.
우파가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이것이다. “저건 좌파 이론이니까 볼 필요 없다.” 이 말은 상대의 무기를 보지도 않고 전투에 나가겠다는 선언과 같다. 실제로 좌파는 오랫동안 문화, 교육, 언론, 출판, 예술 영역을 통해 자기 언어를 반복해 왔다. 반복은 힘이다. 같은 표현이 계속 쓰이면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시장은 위험하다’는 말은 설명 없이도 통한다. ‘국가는 보호자다’라는 이미지는 질문 없이 받아들여진다. ‘안보는 과거의 사고방식’이라는 표현도 이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이런 문장들이 법 조항으로 강제된 적은 없다. 단지 학교 수업, 기사 문장, 드라마 설정, 토론 프로그램의 전제 속에서 쌓인 결과다. 이것이 문화진지전의 실제 모습이다. 조용하고 느리지만, 확실하다.
그런데 우파는 이 싸움을 자주 도덕 논쟁으로 바꿔버린다. “저건 틀렸다”, “저건 불순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문제는 그 말이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는 계속 같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퍼뜨린다. 우리는 계속 얻어맞는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옳았는데 억울하게 졌다”는 말만 남는다.
정치와 문화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외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좌파가 그람시를 연구했다고 해서, 우파가 그람시를 연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반대다. 상대가 어떤 지도를 보고 움직이는지 알아야, 다른 길을 설계할 수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그람시의 모든 생각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의 정치적 결론에 동의하라는 말도 절대 절대 아니다.
다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싸웠는지, 왜 그 방식이 효과를 냈는지는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과 버릴 것을 가려야 한다. 이것이 성숙한 대응이다.
※ 이런 내용을 담은 졸저《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가 출간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 전에 《신화가 된 조선》이 늦어도 2월 초순엔 출간될 예정입니다. 우파 필독서가 되기를 소망하며 썼습니다. 무조건이라는 말씀은 못 드리지만, 많이 구매해주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