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모독이란!” - 용서의 길이 닫혔는가? - /성주 박 님의 성경해설
“성령 모독이란!” - 용서의 길이 닫혔는가? -
말씀: 누가복음 12장 10절(11월 28일, 토)
많은 이들이 이 말씀 앞에서 한 번쯤은 멈춘다. 어떤 죄는 용서되고, 어떤 죄는 용서되지 않을까?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알고 경험한 사람이라면 더욱 당황할 수 있다. 정말 하나님께 용서되지 않는 죄가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누구든지 인자를 거역하는 말을 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눅 12:10)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구절이 아니라 은혜와 경고가 함께 흐르는 정교한 신학적 진술이다. 그 핵심은 “예수님 vs 성령님”의 대립이 아니라 계시의 단계와 그 계시를 거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음을 알려준다.
1. 오해될 수 있는 하나님: 인자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이 “인자”(사람의 아들)로 오셨다는 사실은 복음의 스캔들이자 은혜의 시작이다. 그분은 영광의 광휘 아래 내려오지 않으셨다. 가난한 자의 마을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힘없는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 육신의 약함과 사회적 비천함은 예수님을 오해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나사렛 사람들이 “저 목수의 아들이 무슨 메시아냐”라고 말한 것도, 대제사장들이 “백성을 미혹한다”고 비난한 것도, 심지어 제자인 베드로가 두려움 속에서 그를 부인한 것도 그 자체로는 비극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인간적인 실수의 영역 속에 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인자를 말로 거역하면 사함을 받으리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를 부인한 사람들을 위한 용서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넘어진 자를 다시 일으키는 은혜의 품이 십자가 안에 있다.
2. 성령의 조명과 내적 증언
성령의 역사는 다르다. 성령님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드러내는 내적 빛이시다. 양심과 말씀 속에서 분명하게 반복적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로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로 이끌고, 용서의 길을 비추며, 은혜의 품 안으로 초대하신다.
성령님은 우리 속의 어둠을 들추어 부끄럽게 하려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는 분이시다. 따라서 성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하다”라고 말하는 수준이 아니다. 빛을 보면서도 그 빛을 악이라고 규정하는 행위이다. 예수님을 적대한 바리새인들은 그분의 치유를 보면서도 그 능력을 ‘귀신의 힘’이라고 폄하했다. 빛을 보았지만, 고의적으로 어둠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무지나 실수가 아니라 분노하는 거부 의지였다.
3. 실수는 용서된다
신앙의 길에서 넘어짐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공포에 질린 베드로, 의심했던 도마, 엠마오로 돌아서던 제자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성령의 빛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의 빛 앞에서 갈팡질팡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찾으시고, 부르시고, 회복하셨다. 실수와 오해는 은혜 앞에 벽이 되지 않는다. 실족한 자에게는 언제나 돌아올 길이 있다. 믿음이 흔들려도, 마음이 열려 있다면 은혜는 여전히 흐른다.
4. 하지만 거부는 치유되지 않는다
성령 모독의 핵심은 단순히 불순종하거나, 실수하거나, 시험에 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치유의 손길을 ‘폭력’이라 부르고, 자유의 목소리를 ‘억압’이라고 규정하며, 회개의 촉구를 ‘방해’라고 취급하는 태도이다. 빛을 보았으나, 고의적으로 그 빛을 차단하고, 악으로 규정하는 마음의 완고함이다. 그래서 성령 모독은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는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죄”이다. 하나님은 문을 닫지 않으시는데, 인간이 스스로 문을 잠가 버리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10절은 하나님이 죄인을 골라내어 버리는 본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복을 스스로 거부하는 인간의 비극을 폭로하는 본문이다. 인자를 거역한 자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도, 베드로처럼 부인한 자도 회개의 자리로 돌아왔다면 용서를 경험했다. 하지만 성령을 모독한 사람은 회개할 기회조차 스스로 닫아버린다. 빛을 잃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빛을 거부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닫힌 마음이 비극을 낳는다.
마무리하며
오늘 본문은 우리를 두렵게 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도 열려 있는 회개의 문으로 초청하는 말씀이다. 성령 모독은 과거의 어떤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태도와 방향성이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돌아오라, 새로워져라’ 라고 말씀하신다. 그 때 그 음성이 부담스럽고 불편해도 그 빛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 그 부르심 앞에 문을 잠그지 않는 것이다. 넘어져도 괜찮다. 흔들려도 괜찮다. 두려움 속에서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빛 앞에서 마음을 닫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은혜의 땅에 서 있다. 오늘도 성령님은 우리를 정죄하려는 분이 아니라 회복의 자리로 초대하시는 분이다.
기도문
진리의 빛이신 하나님,
양심을 흔드실 때, 회개를 촉구하실 때,
우리 마음이 굳어지지 않게 하소서.
빛을 보면서도 어둠을 선택하지 않게 하시고,
은혜를 느끼면서도 적대하지 않게 하소서.
성령님, 오늘 이 시간 닫힌 마음을 열게 하소서.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