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농담/ 천양희/ 이해우 시인 해설
내가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는 천양희 시인의 '오래 된 농담'이란 시다. 이 시를 읽으면 웃음이 나오는데, 다 읽고 나면 코 끝이 찡하다. 부부의 사랑을 한 편의 시에 압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가는 쉬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그 바다같은 사랑을 주먹만하게 압축했는데, 읽어보면 우주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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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농담
/ 천양희
회화나무 그늘 몇평 받으려고
언덕 길 오르다 늙은 아내가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합환수 가지끝을 보다
신혼의 첫밤을 기억해 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그늘보다 몇평이나 더 뚱뚱해져선
나, 생각보다 무겁지? 한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무거울 수 밖에
굵은 주름이 나이테보다 더 깊어보였다
굴참나무 열매 몇 되 얻으려고
언덕 길 오르다 늙은 남편이
깊은 숨 몰아 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열매 가득한 나무끝을 보다
자식농사 풍성하던 그날을 기억해낸
늙은 아내가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열매보다 몇 알이나 더 작아져선
나, 생각보다 가볍지? 한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에 바람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
그러니 가벼울 수 밖에
두 눈이 바람 잘 날 없는 가지처럼 더 흔들려 보였다
농담이 나무그늘보다 더더 깊고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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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나이가 들면 부부의 사랑은 에로스 적에서 로고스 적으로 변해간다. 자극적인 말은 호르몬에 좌지우지되던 젊은 시절의 사랑법이다.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삶의 이해가 깊어지며 부부들의 사랑도 사랑방의 온돌처럼 뜨거움에서 따스함으로 농익어 간다. 행동과 말은 충동적이지 않게 되어 달콤한 말보다는 가식 없는 농담에 끌린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고 장난 같지만 진솔한 말은 지친 삶에 깊고 서늘한 상쾌함과 신뢰를 준다. 이를 연륜이라 한다. 그런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왜일까? - 이해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