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개론
한국사회복지학회의 창립과 통합을 돕다
양곡(陽谷)
2025. 8. 12. 18:07
[배워서 남 주는 학술활동]-004. 한국사회복지학회의 창립과 통합을 돕다. 이용교(광주대학교 교수, 복지평론가)
[인사말] 지금은 지난 일을 갈무리하고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지 45년이 지났고,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38년이 되었습니다. 퇴임을 준비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 50회 내외를 쓸 계획입니다. 그동안 함께 한 모든 분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필자는 한복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연구자에게 필요한 기술과 자세 등을 익히면서, 동시에 한국사회복지학회 간사로 일하면서 사회복지학계의 인물을 접하고 학술활동의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사회복지학회가 홈페이지 https://kasw.org 에서 밝힌 연혁에 따르면, 1957년 3월에 한국사회사업학회(회장 김덕준, 중앙신학교 교수)로 창립되었다. 학회가 창립된 지 1년반만인 1958년 9월에 회장은 서울대 하상락 교수로 바뀌었다. 1961년 5·16으로 사회단체 활동이 규제받으면서 학회도 해산되었다. 1972년 7월에 학회 재건준비위원회(하상락, 지윤, 김덕준, 이광자. 조경미, 김융일)가 발족되었고, 1973년 3월에 하상락 회장, 문인숙 부회장(이화여대 교수)이 선임되었고 9월에 ‘미국사회복지정책의 새로운 동태’를 주제로 월례회와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한국사회사업학회는 1970년대 초기까지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았다. 핵심 회원이 사회사업학과 교수들이었고, 1966년 3월에 만들어진 한국사회사업교육협의회(초대 회장 하상락, 현 한국사회복지교육협의회)를 통해 교육과정과 사회사업현장실습 등 주요 관심사를 논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건된 한국사회사업학회는 1979년 3월에 사회사업학회지 창간호를 발간하고, 1980년 3월에 장인협 회장과 이명흥 부회장이 선임되어 1981년 4월에 학회지 제2호, 1982년 3월에 제3호를 발간하였다. 그해 10월에 추계학술발표회를 갖고 이명흥 회장과 남세진 부회장이 선임되고, 1983년 3월에 제4호를 발간하였다. 그해 4월에 춘계학술발표회를 갖고 남세진 회장을 선임하고 1984년 6월에 제5호를 발간했다. 이 시기에 학회는 일 년에 한 차례 정도 학술발표회를 갖고 발표된 논문을 중심으로 학회지를 발간하였다.
한국사회사업학회는 1973년 하상락 회장(문인숙 부회장) 이후 장인협 회장(이명흥 부회장), 이명흥 회장(남세진 부회장), 남세진 회장까지 회장단은 서울대와 이화여대 교수가 독차지하고, 임원진은 주로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이었다. 1978년부터 중앙대, 부산대, 서울대 등이 사회사업학과를 사회복지학과로 바꾸고, 이후 여러 대학교들은 사회복지학과로 신설하였지만, 한국사회사업학회는 한국사회복지학회로 이름을 바꾸는 것을 주저하였다. 한국사회의 사회문제에 대한 정책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학자들이 학회 이름을 바꾸고, 회원과 임원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잘 수용되지 않았다. 지방대 교수들은 기존 학회 회원이었지만, 사회복지현장에 바탕을 둔 실무계 임원들은 회원이 아니었기에 회원 가입을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도 커졌다.
이에 1985년 2월 9일에 각계 대표 20명이 ‘한국사회복지학회 발기 총회’를 개최하고, 2월 12일에 85명의 회원이 ‘창립 총회 및 제1회 연구발표회 준비위원회’를 개최하여 준비위원장으로 중앙대 김영모 교수를 선임하였다. 그해 3월 1일에 사회복지회관에서 ‘창립총회 및 제1회 연구발표회’를 가졌다. 총회에서 회장에 김영모 교수(중앙대), 부회장에 권오구 실장(한국사회복지협의회), 박태룡 교수(대구대), 심대섭 교수(원광대)가 선임되었다. 총회에서 위임된 이사(21명)는 회장단 회의에서 선임되었고, 이후 감사 2명도 선임되었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필자는 한국사회복지학회 창립 총회 및 제1회 연구발표회에 참석한 기억이 선명하다. 김영모 회장은 창립일을 3월 1일로 정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미국 사회사업학계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사업학회의 학풍을 넘어서 자주적 사회복지학을 개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영모 회장은 1985년에 창간한 학회지 ‘한국사회복지학’ 제1집의 발간사에서 “본 학회를 창립한 동기는 온 국민이 복지국가의 건설을 염원하고 정부에서도 복지사회의 건설을 국정지표로 내세웠지만 그것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과제를 풀어보는 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해방 후 40여년간 우리나라에 수용된 사회복지학은 비자주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6·25전란으로 말미암아 외원과 더불어 미국식 사회사업 개념이 그 주류를 이루다시피하여 행정가와 전문가로부터 경시되어 왔다. 사실 그러한 방법론은 우리의 사회적 요구와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용하지 못하였다”고 비판하고, “80년대부터는 우리의 자주적 사회복지학풍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기존제도의 결함이 무엇이고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가를 이론적으로 정책으로 탐구하려고 한다”라고 주장했다.
새로 창립된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단과 이사진을 보면 한국사회사업학회에서 다소 소외된 지방대학교 교수, 정치인, 고급 공무원, 사회복지현장 관계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사진은 김국도(법인문제연구소 소장), 김근조(홀트아동복지회 부장), 김상협(한국청소년연맹 부장), 김오현(사회복지시설연합회 회장), 김종길(한국봉사회 관장), 권오득(사회정화위원회 전문위원), 송정부(상지대 교수), 어윤배(숭전대 교수), 안병규(국회의원), 이광찬(보사부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전문위원), 이근창(피어선신대 교수), 임춘식(한남대 교수), 정철수(의료보험연합회), 최경구(경기대 교수), 최경석(중앙대 교수), 최영욱(성결신대 교수), 표갑수(청주대 교수), 함종한(국회의원), 이두호(환경청 국장), 인경석(보사부 부장), 차흥봉(한림대 교수) 등이고, 감사는 이효선(중앙대 교수)과 원철희(농협중앙회)이었다. 학회 임원진에는 중앙대 교수와 동 대학원과 사회개발대학원 출신이 적지 않았다. 그때까지 한국사회사업학회는 학부에서 ‘사회사업학’을 전공한 사람을 중시하고, 학부에서 타 전공을 하고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사람을 중용하지 않았다. 새 학회는 대학교수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행정가, 사회복지시설 시설장과 직원 등을 이사로 선임하여 활동의 장을 제공하였다.
한국사회복지학회 발기 총회가 열린 시기인 그해 2월에 한국사회사업학회는 임원회를 통해 한국사회복지학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교육부에 등록하였다. 4월에 ‘사회복지학회지’ 제6호를 발간하고, 춘계학술발표대회에서 회장으로 성규탁 교수(연세대), 부회장으로 김만두 교수(강남대), 최일섭 교수(서울대)를 선임하였다. 학회 명칭의 변경은 정관 개정 사항이고 정관은 총회에서 개정할 수 있는데, 총회 전에 명칭을 선점하고자 하였다.
1985년 3월 1일에 한국사회복지학회가 창립된 이후 김영모 회장이 소장인 한국복지정책연구소는 회장단과 이사회의 회의 장소로 자주 사용되었다. 학회의 제반 사무는 한복연 정종우 연구원이 맡고, 필자는 연구발표 및 학술토론회와 같은 행사를 거들었다. 필자는 1986년 하반기 두 학회의 통합이 논의될 때 간사이었고 이후 통합 학회의 간사도 맡았다.
1986년 5월에 기존 한국사회복지학회는 회장 신섭중 교수(부산대), 부회장 문인숙 교수(이화여대), 민은식 원장(삼육재활원)으로 바뀌었다. 신섭중 회장은 새 한국사회복지학회(회장 김영모)와의 통합을 적극 추진했다. 양 학회는 임원진을 중심으로 물밑으로 대화하고 1986년 11월 8일에 한복연 소장실에서 열린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단 회의’에서 다음 네 가지를 합의했다. 내년 춘계대회에서 양 학회의 통합총회를 갖는다. 양 학회의 회장단으로 통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 연구발표 및 학술토론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양 학회의 회장과 학술 및 편집분과위원장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한다. 연구발표 및 학술토론회를 합동으로 하고, 1986년 추계의 경우 김영모 회장이, 1987년 춘계의 경우 신섭중 회장이 주관한다.
필자는 양 학회의 통합을 논의하는 회의에 배석하여 회의록을 작성하고, 김영모 회장이 주관한 추계대회를 준비하며, 신섭중 회장이 주관하는 춘계대회를 지원하였다. 홀트 일산타운에서 열린 추계대회를 준비할 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생겼다. 양 학회로부터 발표자의 원고를 받아 자료집을 만드는데 시간에 쫓겼다. 을지로에 있는 인쇄소에서 청타로 찍어 자료집을 만드는 기획사에 최종 교정지를 준 것은 행사 전날 밤이었다. 최종 교정지에서 오자는 몇 개에 불과했고, 이런 경우에 기획사 담당자가 대조 교정을 본 후 인쇄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행사 당일 아침에 배달된 자료집을 본 회장님이 “자기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책자를 누가 신뢰하겠느냐?”고 크게 야단쳤다. 최종 교정지에서 머리말에 金泳模를 金泳謨로 교정하도록 지시하였는데, 그 글자가 수정되지 않은 채 인쇄된 것이다. 급히 수정자를 부탁하여 해당 글자만 오려 붙여 행사에서 배포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원고를 쓰거나 책을 만들 때에는 끝까지 확인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양 학회 회장단은 통합에는 쉽게 동의하였지만, 어떤 내용으로 통합할 지를 고심하였다. 1986년 12월 21일에 열린 학회통합준비위원회는 다음 네 가지 사항을 합의하였다. 즉, 통합원칙은 각 학회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고, 참가비는 통합학회의 기금에 기여하며, 회원자격은 사회과학분야 학회의 회원규정을 참고하여 회원 자격을 개방하고, 통합총회는 1987년 통합대회에서 한다. 또한, 1987년 2월 24일에 준비위원회는 정관기초위원(권오구·김성이)이 기초한 정관을 통합총회에서 토의·합의하고, 양 학회의 임원은 과도기로서 일 년간 통합학회 임원이 되며, 통합후 학회지의 재정·학회지 발간을 일원화한다 등을 합의하였다.
마침내 1987년 3월 28일부터 29일까지 부산 해운대 극동호텔에서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통합 총회를 개최하였다. 신섭중 회장은 부산대 교수와 대학원생들을 참여시켜 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이 행사를 지원하면서 부산대 대학원생인 홍봉선 선생(후에 신라대 교수), 박광준 선생(후에 신라대 교수, 현 일본붓쿄대 교수) 등을 만났고 오랫동안 교류하였다.
한국사회사업학회에서 이름이 바뀐 한국사회복지학회의 임원진은 회장 신섭중 교수(부산대), 부회장 문인숙 교수(이화여대)이고, 이사진은 김득황(동방아동복지회), 김천주(대한주부클럽연합회 회장), 김한규(홀트아동복지회 회장), 남경현(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관장), 남세진(서울대 교수), 문병기(장애인재활협회), 박대선(한국선명회), 이명흥(이화여대 교수), 이태영(대구대 교수), 장인협(서울대 교수), 탁연택(전 대한사회복지회 회장)이며, 감사는 김태영 교수(경북대), 김만두 교수(강남사회복지학교)이었다. 또한 통합학회를 운영하기 위해 1987년 9월 25일에 구성된 운영위원회에 기존 학회 구성원이 대폭 포함되었다. 즉, 총무위원에는 김성이 교수(이화여대), 김현숙 교수(국립사회복지연수원), 유수현 교수(서울신대), 연구위원에는 김융일 교수(성심여자대), 이윤구 교수(한신대), 편집위원에는 이혜경 교수(연세대), 류기형 교수(부산대), 최성재 교수(서울대), 홍보위원에는 방희덕 교수(연세대), 김연희 교수(경남대), 김영호 교수(강남사회복지학교), 신광섭 교수(숭실대), 조휘일 교수(서울여대) 등이 선임되었다.
통합된 한국사회복지학회의 회장은 김영모 교수와 신섭중 교수가 맡았는데, 학회 간사는 주로 김영모 회장의 지시를 받고 일상업무를 수행하였다. 학술대회 등 큰 행사는 회장단과 운영위원회가 기획하였지만, 임원과 회원에게 우편물을 발송하는 등 일상 업무는 간사가 담당하였다. 기억을 더듬으면 학회 회원수는 약 350명이었다. 양 학회의 회원이 각각 200여 명이었는데 일부는 둘 다 등재되었기 때문이었다. 회원들에게 우편물을 발송하면서 전체 회원의 절반 가량은 대학 교수와 연구원 등 학계 인사이고,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며, 서울 회원의 다수가 강남구와 서초구에 산다는 점이었다. 절대 다수가 아파트에서 사는데, 지방 회원은 ‘현대아파트’인 경우가 많았다. 무주택자인 필자의 입장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필자는 ‘한국사회복지학회 50년사: 1957~2007’에서 1985년부터 1988년까지 3년간을 기록하여 ‘한국사회복지학계의 통합과 혁신(1980년대 중반)’을 집필하였다. 당시 양 학회의 정관, 학회지 등을 분석하여 “2년간의 실험은 양 학회의 통합으로 정리되었고, 3년간의 경험은 이후 한국사회복지학회의 조직과 운영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하였다. 이 시기에 “회원 가입을 개방하여 회원수가 크게 늘었고, 학술대회가 춘계대회와 추계대회로 정례화되었으며, 학회지 발간은 연간 2회로 늘었다. 학회지에 수록된 논문도 전통적인 사회사업분야에서 사회정책을 포함한 자주적 사회복지학을 모색하는 내용이 많았다”는 점을 밝혔다. 새 학회의 창립을 기존 학회로부터 ‘분열’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통합 이후 사회복지학계는 더욱 크게 ‘발전’하였다. 필자는 학회 50년사를 집필하면서 한국 사회복지 역사와 사회복지학의 생태계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참조: 한국사회복지학회50년사 편찬위원회, 한국사회복지학회 50년사, 한국사회복지학회·공동체, 2007.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1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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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교 lyg29@hanmail.net [2025년 8월 12일에 초안 작성]